눈이 펑펑 쏟아지던 산사에 머물 때였다.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다. 벽에 못을 치고 걸기가 내키지 않아 차실 바닥에 놓고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먼지를 닦아 내면서 옆에 있던 의자 위에 그림을 올려 놓았다. 그림은 늦은 봄, 햇살이 좋은 어느 날 드디어 벽에 걸렸다. 그런데 그림을 걸기 전과 아주 많이 달랐다. 바닥에 두고 보았을 때와 의자에 놓은 채 바라보았던 느낌, 벽에 걸렸을 때, 서서 볼 때와 앉아서 볼 때와 누워서 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그림 한 점 놓고도 어느 위치서 바라봤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요동친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도 어디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인지되는 건 아닐까. 어느 누구를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는 그림 한 점 놓고도 다양한데 사람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아무도 그 사람이 겪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쉽게 세상을 바라보는 오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 해가 바뀌면서 더 더욱 든다. 각자가 좋아하는 셀로판 종이를 눈에 가리고 ‘이 사람은 노란 색깔이고, 저 사람은 파란 색깔의 사람이야’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의 트라우마나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부정적 시각과 판단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 기억과 현재가 충돌하는 시점이 부정적 결과로 또는 긍정적 결과로 도출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우리가 업(業)으로 상대를, 상황을 판단하고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삶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살고 있지만 우리가 결코 잊으면 안 되는 분명한 것은 있다. 바로 오늘도 잘 바라보기, 매번 잘 바라보기, 바르게 바라보기(正見)다.

※ 필자 주석스님은 1988년 법주사 수정암에서 승일스님을 은사로 출가. 부산 대운사 주지 및 복합문화공간 쿠무다(KUmuda) 관장. 

[불교신문3455호/2018년1월12일자] 

주석스님 부산 대운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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