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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 (2019).3.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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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시]고독의 방 / 차진주
불교신문 자료사진

사방으로 흐르는 하이얀 잉크에

투명한 창을 내고 시를 쓴다

바람을 묶어 단단히 메어두고

그 시로 난 길에 청보리밭

청명한 내음이 입속에 오도독 씹힐 때

영원으로 가는 내밀한 계단이

나직이 나를 부를 때

그 손 잡아 여여히 흐르는 강으로 회양목을 돌아

고이 들어앉은 앉은뱅이 숲

오래된 서커스처럼 안개 같은 향이 피어 오른다

영혼을 견인하는 차 야곱의 사다리

스톡홀름 증후군

콰지모도 콤플렉스의 아가씨들

영원을 향한 길목에서 자유를 찾은 소녀들의 밤

인생의 복락 삶의 뒤안길

수를 셀 수 없는 생의 명과 암

시간을 잊은 고독의 방

파두의 라틴어 원류가

깨어 있는 영혼으로 침묵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아서라,

영겁의 향기 부처님 자비가

고독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부처님 넉넉함처럼…시는 나의 오랜 친구

■ 시 당선소감 / 차진주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니 당선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가 눈처럼 내려앉은 날이다. 따스한 햇살이 편백나무에 부딪혀 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날부터 신춘문예 준비를 했다. 행복하기도 하고 고독한 시간들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의구심이 들 때에도 있었지만 신의 자비하심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진실한 시간으로 저와 시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다.

시를 쓰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진실해야함을 의미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진실을 붙잡고 마주한다. 그리고 진실한 나와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바로 글과 시로써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질문들과 씨름해야만 했다. 삶의 의미와 가치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신과 종교에 대한 갈망은 해가 거듭될수록 계속 되었다. 누구나 신을 찾고 갈증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고민들인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많이 고민해 왔다. 수많은 학자들이 신에 대해 연구하고 정의내리고 있지만 신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 넘는 분이다. 우리는 매일 신의 기적을 체험하는 행운아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멈추고 자신안의 자비와 평화 고요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순간을 글로 쓴다는 점은 참 행복한 일이다.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부처님의 넉넉함처럼 시 또한 나의 가장 오랜 친구다.

요즈음 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럴수록 문학과 시가 많이 필요한 세대다. 우리를 진실로 살게 하는 것은 영혼을 고양시키는 아름다움이다. 성인들은 물론 시와 문학을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이 접하고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교의 아름다운 사상은 문학과 시로 노래하기에 무궁무진하다. 시인에게는 그 지혜가 아름다운 바다와 같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독 속에 분투하고 있을 많은 미래의 예술가들과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다.

 

응모작들의 높은 수준과 시적 풍요로움

■ 시 심사평 / 최동호 시인

본심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섰으나 그 중 일부는 불교적 소재나 불교적 사유가 밖으로 드러나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숙고의 대상이 된 ‘안나푸르나’, ‘집에 들다’, ‘선잠’, ‘생각의 그늘’, ‘불일암 오두막’, ‘고독의 방’, ‘끝’ 등의 시편들은 상당 수준의 시적 공력을 엿볼 수 있었다. 시적 언어의 구사나 이미지의 형상화 능력 등에 있어서 오랜 수련을 알 수 있게 하여 응모작들의 높은 수준과 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을 떠나지 않은 것은 ‘집에 들다’, ‘선잠’, ‘생각의 그늘’, ‘고독의 방’ 등 4편이었다. ‘집에 들다’는 비교적 간결한 시인데 ‘국수 꼬리 같은 나를 보았다’와 같은 독특한 표현이 주목되었으며 마지막에서 불교적 사유를 유연하게 보여주었다. ‘선잠’은 남편을 잃고 제삿날 시골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우회적 어법으로 잘 표현해 내었으나 불교적 소재가 유연하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의 그늘’은 사물을 바라보고 이를 사유하는 과정을 시적으로 변용시키는 유연함을 보여주었으며 긴 시행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마지막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 ‘고독의 방’ 역시 사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산뜻한 첫 부분의 시작과 “청보리밭 청명한 마음이 입 안에서 오도독 씹힐 때”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이 인상적이었으며 중간 부분에서 시어의 열거로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으나 마지막 결말의 처리에서 탄력적인 긴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상의 시편들은 각각이 지닌 장단점으로 인해 우열을 정하기가 어려워 당선작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다시 작품을 정독하고 비교한 다음 다른 분들의 작품보다는 완결성을 지닌 ‘고독의 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말 부분에서 ‘고독을 빛’으로 채워 부처님의 자비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을 강점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편수의 시조가 최종심에 넘겨졌으며 이들 작품 또한 세심히 읽어 보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편들이 너무 형식에 억매이거나 과장된 어법을 구사하고 있어서 당선작의 대상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당선된 분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차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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