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 하복수
  • 승인 2019.01.03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 나비 / 하복수

“그 쪼꼬만 노란 거이 뭣이여? 꼭 나비같이 생긴 게, 그 머시당가... 그려, 상주(喪主)들이 매다는 상장(喪章) 같은디?”

해거름 녘, 장터에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자 김 노인이 무료한 듯 하품을 두어 번 하다가, 슬그머니 다가와 하 사장이 펼쳐놓은 좌판을 둘러보며 괜스레 호들갑을 부린다. 꾀죄죄한 점퍼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최신 유행하는 힙합 모자를 삐뚜름하게 쓴 노인의 눈에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다.

“글쎄요…. 근데, 이놈이 말입니다. 어떤 때는 콧바람이 쐬고 싶은지, 저 혼자 서너 시간씩 팔랑팔랑 날아다니다 돌아온다니까요?”

하 사장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김 노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헤벌리고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되얏네. 아, 노인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뭔 말이여, 시방?”

기분이 상한 듯 휙 돌아선 김 노인이 자기 좌판 위에 펼쳐진 CD 케이스들을 대형 여행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 담기 시작한다. 추억의 카페 여행, 7080 콘서트, 포크송&발라드…

“하하하. 벌써 들어가시게요? 그럼 있다가 여관에서 봬요.”

하 사장의 말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짐 꾸러미를 낡은 갤로퍼 짐칸에 다 실은 김 노인이 이내 골목길을 벗어난다.

 

‘그 말에 그렇게 기분이 상했나?’

하 사장은 혼자 실없이 웃으며, 로보카폴리, 또봇, 스파이더맨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좌판 귀퉁이에서 노란 나비를 집어 든다. 투명 사각 플라스틱 봉투에 박제처럼 곱게 들어있는 나비.

오후 내내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이 기어코 비를 추적추적 뿌리고 있다. ‘순천만갈대축제’라는 글자가 인쇄된 대형 깃발이 비에 젖어 축 처진 채 매달려 있다. 장터 중앙 간이무대 뒤편에 걸린 ‘여자 품바 질경이 공연’이라는 플래카드도 습기 탓인지 맥없이 늘어져 있다.

하 사장은 플라스틱 봉투에서 노란 나비를 꺼내, 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입김을 호호 불어준다.

날개 끝에 미세한 온기가 닿자 내 호흡이 살아난다. 나는 이내 더듬이로 주위를 몇 차례 살핀 뒤 허공에 몸을 싣는다.

비는 여간해선 멈출 기색이 없다. 차가운 빗방울이 두 날개 위로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린다. 얼음송곳이 꿰뚫는 듯 날개가 시리다. 10여 미터를 비틀비틀 날아 진경이네 간이무대 안으로 스며든다. 천막을 떠받친 기둥 안쪽에 몸을 숨기고 내려다보니, 흑자주색 얼굴빛을 한 노인네가 무대 앞에서 혼자 비틀거리며 서 있다. 대낮부터 퍼마신 모양이다.

“안동역에서, 안동역, 안동역…”

노인은 마치 1인 시위라도 하듯 오른쪽 팔을 치켜들고 무대를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진경이는 오방색 손가락 장갑을 낀 손으로 텐트 기둥의 조임 나사를 장난삼아 만지작거리다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노인네를 향해 퉁바리를 놓는다.

“안동역에서는 염병, 추워 죽겄는디 방구석에 들눠 있지 머 한다고 기어 나와서 자꾸 보채 쌓고 지랄이여?”

그 소리에, 비 오는 날 처마 밑의 강아지들처럼 간이의자에 착 눌러 붙어있던 관객들이 킬킬거리며 일제히 박수를 친다.

향진이가 ‘안동역에서’의 전주를 흘려보낸다. 노인이 입을 헤벌쭉 벌리더니 엉덩이를 굼실거리며 무대 앞을 왔다 갔다 한다. 진경이가 반주에 맞춰 장구채를 휘두르며 '아싸, 이~휘' 추임새를 넣다가, 마이크 앞으로 입을 내민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하얀 입김이 안개꽃 다발처럼 바람에 흩어진다. 앞줄에 늘어앉아 있던 중늙은이 두엇이 일어나 차례대로 진경의 장구 줄에 지폐를 끼워 넣는다. 신이 난 진경의 장구채가 더욱 화려하게 허공을 휘젓는다.

진경이가 주봉이, 춘양이, 향진이들과 품바 공연단을 만들어 전국 장터를 떠돌아다닌 지도 벌써 10년째다. 첨에 공연단 이름을 정할 때 진경이 이름을 따서 ‘여자 품바 진경이 공연단’이라고 했더니, 관객들은 어느새 그녀를 ‘질경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생겨나서 쇠똥 사이로 자라는 풀,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서 철이 되면 보리밥알 만한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다는 그 모양새가 어쩌면 진짜 진경이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안동역에서’, ‘천년지기’, ‘미운사랑’ 세 곡을 연달아 부른 진경이 마이크를 주봉이에게 넘긴다. 주봉이는 수년간 갈고 닦은 음담패설을 늘어놓을 것이다. 객석은 이미 반 이상 비었다. 비 오는 늦가을 해거름이 서글퍼진다. 진경이가 무대 뒤로 사라진다.

나는 1년 전, 봄볕이 유달리 따갑던 어느 날 괴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이화령 터널 입구에 쓰러져 있었다. 음성의 한 절에서 오랜 기간 행자 생활을 마친 뒤 마침내 사미계를 받던 날이었다. 그날 ‘청우’라는 법명도 받았다.

나는 선원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어느 처사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국도로 내달렸다. 무엇이 나를 이끄는지 알 수 없었다. 혹 문경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간절함이 머릿속에 들끓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 나는 어떤 형상, 어떤 기운으로 몇 억겁의 시간을, 낯선 우주를 떠돌아다녔는가? 나라고 할 수 있는 체(體)가 없으면서도, 나를 나로 존재케 하는 그 무엇은 무엇인가?

그런 의구심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으니 주변 사물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주변의 소음이 귀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흉포한 물체가 굉음을 내며 내 자전거 꽁무니를 툭 건드리기 전까지도 내 머리는 유황불처럼 뜨겁게 타오르기만 했을 뿐이었다.

자전거에서 튕긴 내 몸뚱이가 허공에 붕 떴을 때, 나는 우주의 축이 아주 약간 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몸이 머물러 있는 지금 여기와 다른, 그러니까 어쩌면 우주의 틈이라고 할 만한, 다른 시공간을 잠깐 엿보았던 것 같다.

그 틈은 그저 한없이 고요했고, 고요했고, 고요했다. 그 고요한 중심을 감싸고 수도 없이 명멸하는 여러 빛이 빙빙 섞여 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요한 빛의 회오리를 뚫고 웬 여인이 다가와서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또 다른 나를, 의식하는 찰나, 갑자기 내 몸이 꿈틀거렸고,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다. 여인의 입에서 살았다, 하는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 빛의 회오리를 뚫고 내게 다가온 여인이 진경이었다.

진경이 패는 ‘음성품바축제’를 마치고 문경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운전하던 주봉이가 터널 입구 바로 앞에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진경이 앞을 내다보니, 터널 입구 갓길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물걸레처럼 사람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고, 10여 미터 떨어진 터널 안쪽에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자전거 한 대가 뒹굴고 있었다. 덜덜 떠는 주봉이를 차에 남겨두고, 진경이 다가가서 보니 웬 승복 차림의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더라고 했다. 그게 나였다. 아마도 지나가던 트럭에 치여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진경이의 살았다, 하는 외침, 혹은 죽비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고요한 틈으로 영원히 빠져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진경이패와 헤어진 나는 다시 절로 돌아갔다.

도망친 지 채 하루도 못 돼 돌아갔으므로, 스님들은 내가 잠시 나들이라도 다녀온걸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부처님께 삼천 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심귀명례를 외우며 천 배를 끝내고 잠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평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내리깐 채 입속으로 능엄주를 외우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졌다.

땀이 눈에 흘러 들어갔나 싶어서 옷소매로 눈을 문지르고 나서 몇 번 눈을 깜빡여 보았으나, 여전히 눈앞의 세상이 흐릿했다. 시선을 들어 부처님을 쳐다보았다. 부처님의 온화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 둥실한 금빛 몸체만 희미하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건 마치 비 오는 밤 운전을 할 때, 사방의 불빛이 앞 유리창의 빗방울에 번져서 사물들의 형체를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삼천 배는 끝내고 싶었다. 아니 오히려 몸에 들이닥친 마구니 정도야,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로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절을 시작했다. 지심귀명례를 외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러나 800배, 700배, 500배로 나누어 삼천 배를 다 마치는 동안, 시야는 여전히 흐렸다. 사물을 아예 구분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초점을 잃어버린 상태라고나 할까? 마치 여러 개의 유리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곤충의 눈을 갖게 되었다. 키틴질의 각막만 가진 홑눈들이 인식한 각각의 영상들이 엉성하게 모여 전체의 상을 보여주는, 겹눈을 갖게 된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눈으로 인식하던 모든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대웅전의 부처님부터 큰 스님, 사형 사제들의 얼굴, 선방과 공양간의 사물들, 하다못해 해우소의 문지방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대상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나는 그 대상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대상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세계는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 본 대웅전의 부처와 지금 보는 부처가 같은 모양이 아닌데, 그 둘이 같은 부처라는 것을 나는 안다. 과거에 본 큰 스님과 지금 보는 큰 스님, 과거에 본 목탁과 지금 보는 목탁 역시 같은 대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본다는 것, 안다는 것, 혹은 봄으로써 안다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과거의 눈으로 본 대상과 새로운 눈으로 보는 대상이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화두였다. 문자나 언어로 주어진 화두가 아니라, 내 몸에 내려진 생생한 공안이었다. 글로만 읽고 안다고 생각했던 가르침들을 이제는 온몸으로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음력 7월 중순 하안거를 해제하던 날, 나는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랑을 둘러메고 절을 나섰다. 산문 밖에 나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오가던 절 마당과 달리, 산길은 험했다. 길바닥은 울퉁불퉁했고,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발이 채여 앞으로 엎어지기 일쑤였다. 길섶에서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이 느닷없이 이마를 쳐서 나도 몰래 헉,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산길을 다 내려오자 승복이 땀에 젖어 비를 맞은 듯 묵직했다. 한여름 땡볕 속으로 나는 걸어 들어갔다.

이른 아침에 음성에서 출발했는데 이화령 터널에 도착하니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승복의 땀은 어느새 바싹 말라 있었다. 바랑에 든 2리터들이 생수 한 병만 마시고 끼니를 거른 채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그렇게 오래 걸렸다.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3시간 반이면 도착하던 거리였다.

휴게소 식당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주문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돌아오니 바로 뒷자리에 세 명의 손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생긴 후로 이화령 터널을 지나는 구도로는 주로 트럭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내 뒷자리에 자리 잡은 세 사람도 트럭 운전사로 보였다.

삽화=용정운

“김 사장은 그래도 주문이 꾸준한가 보네? 요새 얼굴 보기가 힘들어…”

“꾸준하기는요. 하도 물량이 없으이까, 전라도고 강원도고 할 꺼 없이 무조건 뛴다 아임니꺼.”

김 사장이라는 사람이 투덜거리며 마주 앉은 두 사람에게 소주를 따른다.

“하기야 요새 같으면 기름값도 못 건지겠어. 이놈의 경기는 언제 좋아질는지 원. 하 사장은 어때?”

“나야 뭐 늘 그렇지.”

하 사장이라는 사람이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질문을 던졌던 사내가 입맛을 쩍 다신다.

“아따, 이 사람, 얼굴 좀 펴고 살아. 만날 그렇게 죽상을 해가지고…”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남이야 죽상을 하든 말든.”

하 사장이 화장실로 저벅저벅 걸어가자 김 사장이라는 사람이 목소리를 낮춰, 맞은편 사내에게 속삭인다.

“행님, 하 사장이 참말로 사람을 치었다 카던교?”

“난들 아나? 지가 술 처먹고 직접 한 말인데…”

“아, 근데 피해자가 사라졌다면서요. 그라마 됐지, 뭐 그래 심각해갖고 저케 쌓노?”

“그러게 말야. 피해자가 멀쩡했으니까 사라졌겠지.”

“그란데, 완전 찌그러진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담서요? 자전거가 그 정도로 박살이 났으마, 사람도 엔간히 다쳤을 낀데…”

“몰라.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튼 저 친구 여기 이화령에만 오면 저렇게 예민해지네, 글쎄.”

소주 두어 병을 나눠 마신 세 사람은 식당 앞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나는 세 사람이 흩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하 사장이라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터널 휴게소 주차장은 넓었다. 크고 작은 화물트럭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던 사내가 맨 구석 자리에 서 있는 10톤 트럭 앞에 가서 섰다. 자신의 머리 높이나 되는 곳에 매달린 손잡이를 당겨 차 문을 열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무슨 생각엔가 깊이 빠져 있었던 듯, 갑자기 들린 사람 목소리에 사내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누, 누구요?”

“아, 죄송합니다.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내 곤충 눈에 비친 사내의 얼굴은 모자이크처럼 잘게 쪼개져 있었다. 그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내기는 불가능했다. 다만 그 목소리의 떨림으로 나는 사내의 당황하는 기색을 읽어냈다.

“스님이시오? 아 이 밤중에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삭발 머리에 승복을 입은 내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사내는 적이 안심한 듯, 되물었다.

우리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라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배송 일정이 빠듯한 화물트럭들은 이미 떠났고, 나머지는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하기 위해 트럭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 있을 터였다.

“제가 넉 달 전에 저 터널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받힌 사람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의 동작이 얼어붙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파리 한 마리가 탁자에 놓인 음료수 잔 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저는 음성에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청우라고 합니다.”

내가 다시 말을 꺼내자 그제야 사내의 동작이 서서히 풀렸다. 음료수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사내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터널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평소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 터널이거든요. 사고가 나자 너무 겁이 나서 한 10분여를 그냥 내빼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되돌아왔었지요. 근데 자전거는 찌그러져서 나뒹굴고 있는데, 사람은 온데간데없더란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내가 그때 놀란 심정을 되새긴 듯 넌더리를 쳤다. 내가 뒤통수를 긁으며 싱긋 웃자, 사내는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스님, 웃음이 나옵니까, 지금? 내가 지난 넉 달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사람을 치었는데, 피해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고, 자전거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사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짐작이 갔다. 어쨌든 그는 천성이 착한 사람인 듯했다.

“처사님, 본의 아니게 마음고생을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하 사장은 고등학교 때 문예반 친구의 권유로 어느 문학 잡지에 꽁트 한 편을 보냈다가 채택이 된 이래, 언젠가는 제대로 된 소설 한 편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학창 시절 내내 책을 읽고 문장을 다듬었으나, 그 한 편의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그만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사무실에 앉아 상사 눈치를 봐가며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는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동료들과 주식, 부동산, 스포츠, 연예 따위의 주제로 희희낙락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어색한 관계에서 자유로웠고,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어디서든 혼자 집중해서 문장을 다듬을 수 있었다.

곧 멋진 소설이 탄생할 듯했지만, 한 해 두 해 세월이 쌓여도 글은 완성되지 않았다. 화물을 싣고 낯선 길을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여관, 모텔에서 잤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도시, 낯선 이불, 낯선 공기 속에 있었다. 간밤의 수많은 단상들이 후회처럼, 눈물처럼 노트북에 어질러져 있었으나, 그것은 결코 완전한 서사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럼 결혼을 하고 생활을 꾸려나가시는 게 어때요?”

내 말에 하 사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는 전생에 아마 철새였는지 몰라요.”

하 사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논두렁에 우두커니 서서 외로움에 긴 목을 위태롭게 꼬고 있는 두루미가 떠올랐다. 그것과 많이 닮은 하 사장의 모습. 철새에겐 철새로 정해진 생이 따로 있겠지, 싶었다.

하 사장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김천, 청도, 밀양을 거쳐 내려가다 양산에서 꺾어져, 순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새 11월, 차가운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내내 도시마다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김천포도축제, 청도반시축제, 밀양대추축제, 양산차문화축제. 진경이 패는 축제가 열리는 전국의 장터를 찾아 떠돈다고 했었다.

순천에 도착하니, ‘순천만갈대축제’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축제 마당 저 너머로, ‘여자 품바 질경이 공연’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멀리서 진경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축제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나는 축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객들을 태운 유람선 한 척이 기적을 울리며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갈대숲 사이를 떼 지어 돌아다니던 여행객들도 출발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검은 물새들이 가까운 하늘을 우우 몰려다녔다. 검은 개펄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는 진경이 패의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 장비들을 부지런히 거두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주봉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헛기침을 했다. 주봉이 돌아보았다.

“어? 하이고 시님, 여긴 워짠 일이요?”

주봉이 놀란 얼굴로 인사를 했다. 나도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주봉의 목소리에 무대 뒤에서 머리 둘이 툭 튀어나왔다. 춘양이와 향진이었다. 그들은 공연에서 번 돈을 세고 있었는지, 지폐 다발을 손에 들고 있었다.

“워메, 시님. 이런 곳에서 또 만나네요잉.”

“시님, 몸은 괜찮으신게라우?”

둘이 동시에 말을 걸었다. 나는 괜찮다고, 웃어주었다. 그때 공연장 귀퉁이에 세워져 있던 승합차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진경이었다. 온종일 장구채를 휘두르느라 지친 몸을 잠시 누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진경이 한걸음에 달려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가까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짱뚱어탕을 시켰다. 나는 주봉이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셨다.

“아따 시님, 약주도 곧잘 하시네요잉.”

“술도 음식인데요, 뭘.”

내가 쑥스럽게 웃자, 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믄요. 대장부로 났웅께 거침없이 살아야제, 그깟 음식까정 가려가며 무신 도를 닦겠어요.”

“하이구. 우리 누님 오늘 엄팡 씨게 나가뿌네요잉.”

주봉이 설레발을 떠는데도 진경은 못 들은 척, 잔을 쳐들었다.

“씨긴 머가 씨여. 자 술이나 마시드라고.”

진경이 주도하자 술잔이 급하게 돌기 시작했다. 진경이패의 여정은 순천에서 일단 마무리된다고 했다. 일행은 근 일 년 동안 떨어져 있던 제 가족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가, 이듬해 이른 봄에 다시 모일 것이었다.

“어릴 적에 쩌기 뻘에서 짱뚱어도 잡고 그랬는디…”

-짱뚱어요?

내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자, 진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울 엄니는 모두 여섯 남매를 낳았지라. 위로 나까정 딸이 다섯, 그라고 막내는 사내. 나는 셋째지라이.”

탁자 건너편에서는 주봉이가 향진이의 귀에 뭔가를 속살거리며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춘양이는 스마트폰으로 무슨 게임을 하는지, 열심히 화면을 문지르고 있었다.

“울 아부지도 장개 들기 전까지는 시님이었다 하대요.”

한국전쟁이 나기 이태 전, 제주도에서 남한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대가 민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이승만정부와 미군정은 여수14연대를 만들었다. 여수14연대 1대대는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는 대신, 병기고를 탈취한 뒤 남원·구례·보성 등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인민재판을 열어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처형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장갑차를 앞세워 반란군을 진압했다. 반란군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듬해 봄이 되기 전에 주모자급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현장에서 사살 당했다.

진압군은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업에 나섰다. 정부는 계엄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였고, 군법 재판을 열어 수천 명의 민간인을 현장에서 총살했다. 부역자 색출작업은 한 달 반이나 계속되었다.

그때 진경 아버지의 나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시체 더미 속에서 용케 아들을 발견한 진경의 할아버지는 아들을 인근 절에 숨겼다. 진경의 아버지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다. 마지못해 출가를 한 셈이었으나, 절밥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십수 년 동안 진경의 아버지는 전국의 절을 떠돌아다녔다.

“지가 요로코롬 나이를 묵고도 온 동네방네 싸돌아댕기는 것이 아마 울아부지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거이 아닌가 모르겄소.”

향진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창가로 달려갔다.

“야, 눈이다!”

일행의 눈길이 창밖으로 모아졌다. 오후 내내 찌푸리고 있던 하늘이 그새 온 세상을 하얗게 바꿔놓고 있었다. 때 이른 첫눈이었다.

첫눈을 본 흥분에 다시 술자리가 활기를 띠었다.

“그란디, 시님은 뭐 한다고 여그까지 오셨소?”

춘양이가 제 앞의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나는 말없이 어깨에서 바랑을 벗겨내어, 바람개비를 꺼내 들었다. 창가로 걸어가서 섀시로 된 창문 고리를 열었다. 멀리 어둠 속을 헤치고 나온 바닷바람이 눈발을 가로로 휘날리고 있었다. 눈발이 섞인 바람을 맞아 바람개비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부처님 가슴에 나타났다는 길상(吉祥)의 표지인 만(卍)자를 눈여겨보았지요.

나는 손가락으로 바람벽에 글자를 그렸다. 실내의 습기로 이슬이 맺혔던 바람벽에 그려진 만(卍)자는, 바람개비의 모양 그대로였다.

“바람개비가 바람을 맞아 돌기 위해서는 중심이 필요한 법이지요. 세상 만물이 쉼 없이 이 세상에 들고나고, 하염없이 돌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분명 하나의 중심축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세상 만물, 모든 생명과 인연을 움직이게 하는, 움직이지 않는 우주의 중심. 그 중심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찾아내야 할 궁극의 지점이 아닌가 싶어서요.”

주봉이는 여전히 향진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춘양이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진경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손에서 바람개비를 낚아채서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한쪽 발로 밟아 뭉갰다.

“옘병, 그깟 바람개비…”

나는 당황했다.

“시님은, 시방 그 육시럴 우주의 중심인지 머시긴 지가 뭉개지는 걸 보셨구만이라.”

진경이 하하 웃었다.

아침 일찍 순천만생태공원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어떤 남자가 도로 옆 갈대밭에서 시신 하나를 발견했다. 회색 두루마기 차림의 나였다.

경찰들은 바랑 속에서 낡은 다이어리를 찾아냈다. 다이어리 속에는 두 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하나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또 하나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그 여학생은 진경의 얼굴을 빼다 박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수학여행 가던 길에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은 내 조카였다. 젊은 남자에게 안긴 남자아이는, 나였다.

 

젊은 아버지는 문경 어느 절 생활을 마지막으로 파계를 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난리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 생활을 시작한 지 십오 년만이었다. 내게는 나보다 열 살 많은 누님이 있다. 누님이 태어나고 일 년 뒤,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자마자 할아버지는 아들을 동네 처녀와 혼인시켰다.

어머니는 미인이었다. 가느다란 몸매, 흰 피부, 반듯한 콧날. 그런 모습을 한 여인네라면, 수행 중인 사내를 파계로 이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향 마을로 돌아가 정식으로 장가를 들고 딸 셋을 낳은 사내가,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님이 열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더라고 했다. 그 이듬해, 나는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철새처럼 엄마 집을 다녀간 모양이었다.

“까짓 속세의 인연, 얼매나 질긴지 나도 함 알아봐야 쓰것소.”

진경이 뱉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리고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식당 문을 나서자 주봉이와 향진이, 춘양이는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서 그런지 몸이 쑤신다는 둥, 내일 공연 준비하려면 일찌감치 자야겠다는 둥 자기들끼리 눈짓을 해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관으로 향했다.

나는 진경에게 합장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럼, 이만…”

내가 말을 맺기도 전에 진경은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시님, 갑시다. 까짓 속세의 인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순천만으로 향했다. 눈발은 하염없이 차창 밖에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차는 10여 분 만에 어둠 속 황량한 바람 소리만 들리는 텅 빈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의 밑자락을 훑을 때, ‘순천만생태자연공원’이라는 간판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멀리 어둠 속 갈대밭에서 아우성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바람 소리인지,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 소리인지, 혹은 한 떼의 철새무리들이 가까운 하늘을 지나가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진경의 머리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갈대숲에서는 쉴 새 없이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진경은 천천히 내 회색 두루마기를 벗겨 길 위에 펼쳤다. 나는 진경이 이끄는 대로 두루마기 위에 누웠다. 진경의 하얀 나신이 내 모자이크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까마득한 암흑 저편에서 하얀 눈송이들이 길게 꼬리를 끌며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경주라도 하듯 수없이 많은 하얀 정충들이 어지러이 몸을 흔들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저 너머 침묵을 지키는 우주의 중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연의 씨앗들인지 몰랐다.

나는 진경이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중노릇을 하면서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부처와의 계(契)는 이미 파했다. 계(戒)로써 계(契)를 지킬 수는 없었다. 인연은 맹세로만 단속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첫 번째 맹세를 지우기 위해, 내 몸의 중생을 죽여야 했다.

나는 하 사장을 찾아 나섰다. 이미 나비가 된 나를 하 사장은 금세 알아보았다. 그가 내미는 손바닥 위에 내려앉아, 나는 날개를 가만히 움직였다.

“스님, 언젠가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하 사장은, 1톤 트럭에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을 본뜬 완구류를 싣고, 진경이 패가 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하 사장의 운전석 왼편 대시보드 위에는 빨간색 바람개비가 매달려 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가끔 저절로 돌아간다.

 

시끌벅적 어수선하고 조곤조곤 정을 나누다가 목통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러대고 음탕한 농지거리를 주고받다가 애틋한 표정으로 서로의 안부도 한 번 챙겨보다가 잠시 이유도 없이 침잠했다가 느닷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양되었다가, 그리고 그 모든 눈빛과 표정과 목소리와 손짓과 몸짓들이 멈추면 문득 침묵이 찾아오는 곳, 그곳이 장터이다.

장터에서 장돌뱅이는 노래와 춤과 사연을 팔고, 인생을 판다. 장돌뱅이가 끼어 노는 난장에 와서 사람들은 사는 동안 고달팠던 시름을 툴툴 털어낸다. 그리고 스스로 난장이 된다. 축제가 끝나면, 장마당엔 사람들이 털어놓고 간 시름만 한 가마니 쌓인다.

순천만 갈대숲, 바람이 차다. 바람은 마음이 시리면 살갗을 돋우고, 마음이 더우면 솜털에 맺힌 땀방울을 말린다. 바람은 마음의 결대로 분다. 그런데 어찌하여 갈대는 갈대대로 저 자리에 저렇게, 뻘밭에 하얀 발을 담그고 침묵할 줄 아는 걸까? 가까운 하늘에서 물새 떼들은 아예 광란의 군무를 춘다. 마음을 갖고 논다. 철새들의 몸짓에 마음의 깃털들이 먼지처럼 아무렇게나 날린다. 다행이다.

 

내 글은 호곡(號哭)일 수밖에 없다

■ 소설 당선소감 / 하복수

스물네 살 비정규직 청년 하나가 컨베이어벨트에 휘감겨 죽었다는 뉴스가 나온 날, 당선 통지를 받았다. 이 당선 소감이 인쇄되어 나갈 때쯤이면 벌써 그 뉴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을 것이다.

30여 년 전 한 해, 학내 잡지와 신문에 내가 쓴 시들이 실렸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무릅쓰고 상경했으므로, 내게 문학은 청춘의 열정을 바쳐 이루어야 하는 삶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딱 일 년 만에 나는 문청의 길을 접었다. 그 무렵 나온 <노동의 새벽>을 읽고 나서였다. <노동의 새벽>을 쓴 시인의 이름이 뜻하는 그 무엇이 어쩌면 문학보다 더 값진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조그만 힘이 보태져 1980년대 후반기의 시민혁명이 이루어졌다고 위안하면서, 나머지 20여 년은 그저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았다. 소시민으로 사는 게 어찌 말처럼 그리 쉽기만 하겠는가? 온 힘을 다해,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문학의 자리는 다시 사업전략, 마케팅 불변의 법칙, 성공을 위한 행동지침 따위에 밀려났다. 짧지 않은 년수를 어떻게 살았는지 정리해보니, 이상이다. 그 세월 동안 울고, 웃고, 꿈꾸고, 노래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던 모든 일은 그저 인생의 수로를 채우는 물방울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오랫동안 울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난밤 따뜻한 방 안에서 평범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어느 꽃다운 청년이 밤새도록 전기를 일으키는 컨베이어벨트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이 머리가 으깨져 죽어도, 또 다른 비정규직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 맡아 하므로, 우리는 여전히 평범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선 통지를 받고도, 나는 많이 우울하다. 내 가방에 매달린 세월호의 노란 리본, 그것은 내게 여전히 상장(喪章)이다. 근현대사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 그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떼죽음을 당했다. 그 죽음들을 감당할 수 없어, 우리는 애써 평범한 척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억울한 죽음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어쨌든 내가 쓰는 글은 호곡(號哭)일 수밖에 없다.

건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서사의 향연

■ 소설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신춘문예 소설작품을 심사하는 일은 건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서사의 향연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즐기는 일이다. 소설은 우리들의 우주 속에서 삶의 아픔과 진실을 거두어 아름답고 향기롭게 발설하는 일이다. 예년에 비하여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아, 심사하는 내내 들떠 있었다.

‘식(食)장으로 가는 길’, ‘겨울 나비’, ‘그대와 함께 탱고를’, ‘아촉교’, ‘낮달’, ‘초혼제’, ‘붉은 달’ 등 7편을 본선에 올리고 깊이 읽었다. 먼저 ‘아촉교’, ‘그대와 함께 탱고를’은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는 좋지만 산만하고 되바라진 느낌 때문에 제외됐다. ‘식장으로 가는 길’은 주제는 선명하지만 길게 늘어져 있어, 단편소설의 압축과 팽팽한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 ‘낮달’, ‘초혼제’, ‘붉은 달’, ‘겨울나비’는 모두 아름답고 나름대로의 향기를 지닌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다시 정독했다. 문장의 밀도와 구성과 주제와 읽은 다음의 감동을 기준으로 당선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삶의 무게가 실리어 있고 전체적으로 지적이고 시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겨울나비’가 돋보이고, 슬프고 아련한 느낌으로는 ‘붉은 달’이 돋보인다. 두 작품을 다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어찌할 수 없이 한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

심사는 심사위원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독자들과 함께 한다. 안타깝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겨울나비’를 추천한다. 이 소설의 막판의 문장들, ‘순천만 갈대숲, 바람이 차다. 바람은 마음이 시리면 살갗을 돋우고, 마음이 더우면 솜털에 맺힌 땀방울을 말린다’의 이전과 그 이하는 모두 한 편의 시(詩)로 읽힌다. 이 작가에게 당선을 축하하고 대성하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