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고불총림 율주 혜권스님

담양 몽성산 용흥사(夢聖山 龍興寺), 사시불공이 끝났건만 정오가 지나도 목탁이 끊이지 않는다. 지장전에서 고불총림 율주 혜권스님이 기도중이다. 법당 안이 예사롭지 않다. 목탁과 염불소리는 일정한데 얼핏 보니 노스님이 앉아서 조는 듯하다. 착시이다. 스님의 허리가 굽었을 뿐이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서로운 기운이 전해온다.

혜권스님을 뵐 때마다 그러하다. 스님이 주석하는 방안은 더욱 범상치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가구와 책상이 전부다. 이제 갓 출가한 수행자의 살림살이 그대로이다.“어떻게 사는가.” 
항상 첫 물음도 똑같다. ‘잘 살고 있는지’ 걱정과 ‘잘 살라’는 당부의 뜻이 담겼다. 
세속 나이로 82세, 언제나 당당한 수행자이다.  
손수 빨래하고, 손수 옷을 기워 입는다. 어디 그뿐이랴. 출가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은 기도, 시작은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기도공간을 청소하며 청수 물을 직접 올리는 것부터다. 스님은 ‘기도는 도량청정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스님의 백양사 만일기도는 한편의 드라마를 듣는 듯하다. 30년 가까이 경내 전각은 물론 해우소까지 청소를 도맡았다. 그것도 대중이 잠든 밤중에 대웅전 극락전 명부전 등 불 보살과 신장을 모신 전각을 청소했다. 해우소까지 청소를 마치면 도량석이 울렸다고 한다. 
추운 겨울, 하루는 찬물로 청소하는 스님에게 젊은 스님이 말씀드렸다.
“스님, 따뜻한 물로 걸레를 빨면 쉽게 깨끗해집니다.”
“부처님 계신 곳을 닦아드림에 정성이 없으면 되겠는가...”  
스님의 수행에서 또 하나 빠져서 안 되는 것은 ‘정성’이다.
 
혜권스님은 속가 때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필기는 합격하는데 번번이 면접에서 낙마했다. 만인이 행복하도록 하기위해 출가를 결심했다. 수행자가 되니 떨쳐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었다. 세속의 생각, 욕심, 생활 습성이었다. 그 번뇌는 참으로 지독했다. 어지간히 버리고 씻고 닦아도 떨쳐지지 않았다. 쓸고 닦고 기도하며 오직 깨침을 향한 수행자가 되었다. 
마음뿐 아니라 물질도 머물지 않도록 했다. 어떤 것이든 필요하지 않으면 주변에 나눴다. 옷과 신발도 헤어지면 직접 꿰맨다. 보시는 스님에게 일상생활이다. 스님에게는 어떤 것이든 쌓이거나 머무는 법이 없다. 이런저런 연유로 스님 방은 항상 비어 있다. 

이제는 떨치고자 하는 마음마저 놓은 듯하다. 그런데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무슨 원이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부처님은 혼자만 잘 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모두 행복해야죠.” 
오후 1시경, 지장전 목탁소리가 멈췄다. 혜권스님이 법당을 나와 급히 행장을 차린다.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조사어록 강의가 있는 날이다.
새해 독자들에게 전할 ‘초발심’에 대해 청했다. 
“<자경문>에 남을 해치는 말을 들으면 부모님을 비방하는 말처럼 여기라(若聞害人言 如毁父母聲)고 했습니다. 초발심자는 오직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정진해야 합니다.” 

가사를 들고 기도를 하기 위해 지장전으로 향하는 혜권스님.

 

청수 물을 떠온 스님의 고무신에 물기가 묻어 있다. 바닥 안쪽이 갈라져 있다.  
스님은 기도에 앞서 성냥을 켜서 일일히 초를 밝히고 향공양을 올린다.
지장전에는 스님이 기도하는 동안 추위를 막을 수 있는건 작은 방석과 작은 히터 하나가 전부이다.

 

 용흥사 지장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혜권스님. 하루 세 번 새벽, 사시, 저녁에 세 시간 씩 스님의 기도소리가 도량에 울린다. 
 혜권스님이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삼배를 하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고불총림 백양사에서는 혜권스님의 특강이 있다. 강원시절부터 스님의 강의를 들은 스님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자리다. 스님은 강의할 때 항상 무릎을 굻고 강의를 한다.

 

[불교신문3453호/2019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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