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간 <6월 항쟁과 불교> 살펴보니…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함께한 개운사, 중앙 승가대 학인 스님들이 명동시위 선봉에 서서 투쟁을 펼치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선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며 <6월항쟁과 국본>이라는 기념자료집을 제작했다. 다만 이 책엔 이웃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가 6월 항쟁에서 펼쳤던 활동은 상세히 적어놨지만, ‘불교’의 활약상은 누락돼 교계 안팎에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러나 최근 민주화운동사업회가 민주항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불교’의 활동을 재조명한 <6월항쟁과 불교>를 발간해 주목받고 있다.

윤금선 작가(6월 항쟁 당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부회장)가 집필을 맡은 이 책은 항쟁에 참여한 스님과 불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교계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 투쟁’ 현황을 정리한 기록물이다. 늦었지만 불교 민주화운동에서 공헌한 불교의 모습을 제대로 평가한 셈이다.

특히 1980년대 불교계에서 발표한 주요 성명서와 시국선언문 24편이 수록돼 ‘사료적’ 가치도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일부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불교, 세상으로 눈을 돌리다>

유신독재 시절, 이웃종교가 반유신투쟁에 나설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불교는 1980년 10·27법난 계기로 민족·민주운동에 나선다. 국가권력에 의한 전대미문의 종교탄압을 당한 한국 불교계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땅으로 떨어진 불교를 바로세우기 위한 방법으로 정권에 예속된 현 상황을 탈피하는 ‘불교자주화’에 나섰으며,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바탕으로 중생구제의 대승적 실천을 원력으로 삼은 ‘민중불교’를 모색한 것이다.

이후 사찰을 통해 평등한 공동체를 구현하자는 '사원화(寺院化)운동'에 힘입어 민중불교 이념은 발전했고 1981년부터는 대불련의 운동이념으로 정식 채용되면서 활성화됐다. 1985년엔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창립되며 한국 실천불교의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6월 항쟁 당시 불교인들은 서울 개운사에서 구속스님 석방과 불교 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현수막을 걸어 놓은 개운사 입구 모습.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불교, 세상을 향해 선언하다>

개헌문제가 첨예한 현안으로 떠오르며 각계각층의 시국성명이 쏟아지던 1986년, 조계종 스님 152명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다’는 제하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이전까지 개별적으로 몇몇 스님이 시국성명에 동참한 적은 있었지만 개헌과 민주화라는 사회문제에 불교계 단독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건 처음이었다. 이는 향후 불교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민중의 아픔과 민족의 위기 앞에서 고민하고 대항하던 불교계의 숨은 노력이 드러나는 시작점이었다.

같은 해 5월15일 제등행렬을 통해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분출한 불교계는 사회참여를 표방한 최초의 승가조직인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 창립과 불교자주화 운동의 일대 전기가 되는 ‘9·7해인사 승려대회’를 개최하며 조직적 결집을 이뤄낸다. ‘불교운동과 사회운동이 결코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 향상과 결집된 역량은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모아진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자들이 서울 개운사에서 양심수 즉각 석방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는 모습.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제공.

<불교, 세상과 함께 나서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며 독재정권의 잔혹성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된다. 전국은 경악과 분노로 들끓고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주화 요구는 거세진다.

이 때 그간 역량을 결집해놓은 불교계도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다. 박종철 열사 추모법회 및 투쟁 광주 원각사 5.18 추모법회 침탈 규탄 법회 등 자체적인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1987년 5월 재야인사와 종교인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에 지선스님 진관스님 등 스님 102명과 재가불자 58명이 가입한다.

아울러 불교계는 정토승가회 민불련 중앙승가대 동국대석림회 등이 ‘민주헌법쟁취 불교공동회’를 꾸리며 역량을 하나로 결집해 국본과 공동 활동도 펼친다. 즉 불교계가 민주 항쟁에 중심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다만 민주세력의 선거 패배로 민주 항쟁의 긴 여정은 일단락 됐지만, 역사의 현장에서 민중과 함께 노력한 불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좌절을 디딘 불교는 새로운 운동을 모색했고 이후 통일 사회 활동으로 영향력을 펼쳐나가게 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당시 국본의 상임공동대표였던 지선스님은 “당시 불교인들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자세로 반민주 반역사 반민중적 폭거에 맞섰다”며 “<6월항쟁과 불교>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 화두를 다시 가슴에 되뇌며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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