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는 지요. 저도 잘 있습니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내 전화기에 문자로 보내온 소식이다. 반가웠다. 궁금하던 차에 소식을 주니 고마웠다. 

그런데 반갑고 고마움은 잠시였다. 무언가 허전하고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떨렁 보낸 글 몇 줄 보다는 음성을 듣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들을 휴대전화에서 문자로 주고 받는 시대이지만 문자 주고 받기를 익히지 않은 내게는 그렇게 소식 전하고 받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흔히들 문자 주고받기를 잘 하던데 나도 늙은이인데도 ‘그건 좀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도 따져보면 저한테는 어른인 내게 덜렁 휴대전화에다 글 몇 줄 보내 안부를 물어? 허 그 참.” 소리가 나온다. 세대 차이라 인정하면서도 썰렁한 기분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은 전하고 싶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데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은 것은 뒤로 두고 전해 온 소식을 놓고 문자로 했느니 음성으로 하지 않았느니를 따져쌓는 내 꼬락서니도 허허롭다. ‘그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 좀 들려주면 안되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어도 마주 하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주고 받는게 정감을 더 한다. 음성을 들으면 말 하는 사람의 기분이 좋은 지 궂은지 건강상태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 지를 느낄 수 있다. 떨렁 문자로 전하는 것으로는 그런 걸 알 수가 없다. 

바쁜 시절이라 목소리를 주고 받을 여유가 없어 문자 주고 받기를 한다고 해도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다. 얼마 전에 내게 목소리를 들려준 그 사람이 문자로도 또 한 마디 했다.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목소리 들려 주세요.” 

그 여운이 길다.  

[불교신문3448호/2018년12월12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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