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난 작은 창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멀리서 보면 작은 그림이지만 
다가갈수록 점점 
더 큰 그림이 된다 

그림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보여준다 
운이 좋으면 나무와 노는 
새들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어느 날 부엌 작은 창문에 그림이 걸렸다. 창문은 꾸준히 그림을 바꿔 걸며 날 불렀을 텐데 그 뜻을 헤아리는 안목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그림을 발견한 것은 창밖 은행나무가 온통 노랑으로 뒤덮인 날이었다. 은행잎들은 마치 천마총 금관에 매달아 놓은 나뭇잎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저 건너에서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앉더니 서너 시간을 노랑에 파묻혀 노랑으로 세수하고 노랑으로 깃을 다듬고 노랑으로 멱을 감으며 나뭇가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부엌일을 하며 그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찌르레기 움직이는 몸짓이 어찌나 예쁘던지 창가를 떠났다가도 노랑에 파묻혀 노는 모습이 궁금해 금세 돌아와 지켜보았다. 한자리에 앉아 있는 새를 오래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쪽도 방해하지 않는 창을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을 통하여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는다. 나는 주로 아침을 부엌 창에서 맞이한다. 아침상 준비를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하더라도 부엌으로 먼저 들어가게 되니 자연스레 그곳 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창 너머를 바라보며 날씨를 예상하고 바깥세상의 풍경으로 계절의 변화를 본다. 멀리 산등성이에 봄꽃이 피었는지, 신록이 우거졌는지, 단풍이 들었는지, 밤사이 눈이라도 내렸는지 저절로 살피게 된다. 창이 서향이라면 해가 지는 걸 관찰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상식을 넘어 산등성이로 지는 해가 날마다 자리를 옮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 관찰하는 걸 잊고 지내다 불현듯 다시 보게 된다면, 해가 지는 지점의 위치가 확연히 다른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또 석양이 만들어 내는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창은 외부와의 관계를 소통하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흥미로운 사물이다. 창을 낸다는 것은 나의 깊숙한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나를 열어놓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창을 닫아버리면 내가 외부를 바라보기는 하지만, 들이고 싶지 않은 것을 안전하게 차단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창은 바깥바람을 들이고 집안 공기를 내보내어 쾌적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집의 눈이며 코가 되는 창은 안과 밖을 원활하게 소통하는 창구다. 

어렸을 때 청명한 늦가을이 되면 창호지 문에 문종이를 새로 발랐다. 먼저 문을 문턱에서 분리하여 바랜 문종이를 깨끗이 떼어 내고 그 창살에 하얀 창호지를 바른다. 이때 앉아 있을 때 눈높이 위치에 손바닥만 하게 문종이를 잘라내고 그 크기에 꼭 맞는 유리를 붙였다. 그런 다음 팽팽하게 말랐을 때 문턱에 끼워 넣으면 된다. 손바닥만 한 유리는 문을 열지 않고도 밖이 내다보이는 방안의 유일한 투명 창이었다. 그 유리로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고, 바깥 기척을 먼저 확인하고 창호지 문을 열었다.

부엌에 난 작은 창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멀리서 보면 작은 그림이지만, 다가갈수록 점점 더 큰 그림이 된다. 그림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나무와 노는 새들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밤이면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이웃들 안녕을 짐작하기도 한다. 비록 안부를 직접 묻지는 못하지만, 미루어 짐작하고 서로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살이가 건조하다고 하나 이웃의 사정을 아주 모른 척하고 지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창이 있기 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은 창이지만 내 사정 이웃 사정이 자연스럽게 내비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고 살아갈 수 없기에. 

[불교신문3448호/2018년12월12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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