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명선원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 현장

제주 원명선원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이 '마음 치유' 프로그램으로 인기다. 참가 대중이 좌선을 하고 있다.

한다고 했는데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버거웠다. 그 모진 시간들을 버티게 했던 자식들은 언제부턴가 원망 가득, 독기 서린 눈빛으로 어미를 보기 시작했다. 직장에 나가 한참 나이 어린 직원에게 걸쭉한 육두문자를 들어야 했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몸을 살랐다.

‘죽거나 죽이거나’,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화가 치밀고 절망이 등을 떠밀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시작 한 지 15년, “마음 하나, 생각 하나 바로 잡으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는 김임순 씨는 요즘 “세상을 누리며 산다”고 했다. “얼마 전엔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사람에게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라고 했다니까요. 이전 같았으면 기죽고 상처받아 눈물 질질 짰을 텐데, 스스로도 놀랐어요. 나 너무 멋있지 않아요?”

가정 주부, 자영업자, 대기업 고위직 간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간 펼쳐진 제주 원명선원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에 각양각색 사람이 몰렸다. 서울, 경기, 부산, 제주 등 사는 곳은 제각각. 직업도 나이도 마음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각기 달랐지만 원명선원을 찾는 심정은 같았다. ‘더이상 못 살겠다’ '죽겠다' 싶어서다.

경기도 오산에 사는 김경혜 씨는 조사선 수행에 여태 단 한번 빠진 적 없다. 올해만 벌써 5번째. 새벽에 일어나 버스, 비행기, 택시 등 온갖 것을 타고 내려 걷다 보면 기력이 다 빠지지만 선원에 도착하면 생기가 돌고 수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한 달이 편하다. 김 씨는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싶다가도 스님 말씀을 듣다보면 세상에 얽힐 일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수행 프로그램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전과 달리 매사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원명선원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 핵심은 스님 법문을 듣고 저절로 깨닫는 것. 참가자들은 듣고 이해하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 마음 공부를 한다.
대중법문 하는 대효스님.
요가 프로그램을 통해 머리를 식히는 참가 대중.

‘마음 치유’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지만 사실 원명선원 수행 프로그램 타이틀은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이다. 40년 넘게 재가불자 선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만명 참선 지도를 해온 대효스님이 알기 쉽게 조사선을 설하는데 그 법문이 뜻하지 않게 마음 치유로 이어지고 있다. 절 짓는 것, 불상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적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고등학생, 취업이 안 돼 절망하는 청년, 남편이 바람나 죽을 것 같이 괴로운 주부에게 수행이 당장의 괴로움은 등한시 한 채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려서는 안된다”는 스님 지론 때문이다.

‘선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던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을 사사한대로 대효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도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見性成佛)’. 참가자들은 조사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복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음을 깨닫고 생각을 달리 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설하는 스님 법문을 반복해 들으며 좌선(앉아서 화두 참구), 와선(누워서), 행선(걸어서) 등 다양한 선수행을 체득해 나간다. 다도, 요가, 제주 명소 둘러보기 등 수행 초보자, 일반인을 위한 시간도 있어 지루함도 한결 덜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스님 말처럼 지난 3일 동안 법문은 하루 5~6차례 이어졌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법문은 한번에 1시간을 채우지 않았다. 10대만 알 것 같은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유엔 연설, 언청이를 낳아 가슴앓이 했던 젊은 부모 이야기, 바람난 남편을 두어도 끄달리지 않는 법 등 생활 속 이야기가 육조 혜능스님 전법 이야기로 이어지고 선의 황금시대 이야기와 맞물려 생활 법문, 대중 연설, 심리 상담이 된다.

‘무시간’ 법칙도 원명선원 수행 프로그램 특징 중 하나. 참가 대중은 모두 선원에 들어오는 즉시 시계와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라는 관념에 얽매이는 것조차 경계하라는 뜻이다. 목탁 소리, 죽비 소리에 맞춰 흘러가는 대로 잠에서 깨고 공양을 하고 법문을 듣고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3일이 훌쩍 간다. 시간에 쫓기듯 바삐 살았다던 고영주 씨는 “처음엔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며 “스마트폰이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고 시간을 모르니 비로소 옭아맸던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조사선 수행에서 스님이 재가 대중에게 재차 강조하는 것은 ‘마음’ 하나. “가슴이 숯검댕이가 된다고 하지요? 그 숯검댕이가 어디에 있나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나요? 모두 우리를 얽매는 관념, 있지도 않은 것을 자꾸 떠올리는 생각이 만들어 낸 겁니다. 북받치는 감정을 자꾸 생각으로 펼쳐버리니 병이 되지요. 자기 안의 감정을 관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없는 병도 마음이 만들고 있는 병도 마음으로 고칠 수 있어요. 그러니 병이 없어도 불행하고 병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어쩔수 없는 과거, 있지도 않은 미래에 매달리지 말고 눈앞의 것,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있지도 않은 것을 자꾸 구하면 스스로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겁니다.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완전히 행복한 존재라는 걸.”

허리가 좋지 않아 선 채 법문 듣길 반복하던 오태훈(가명) 씨는 이번에도 기관장들과의 골프 약속을 뒤로 하고 원명선원을 또 다시 찾았다. 대기업 고위급 간부로 “이룰 만큼 이뤘다 생각했는데 여기가 너무 아파서 왔다”며 재차 심장 쪽에 손을 얹던 오 씨는 “스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에 큰 변화가 오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아픔이 심해지면 나도 모르게 그냥 선원에 오게 된다”고 했다. 

‘문천답마.' 원명선원 곳곳, 마음에 생채기 난 이들을 위해 스님이 적어 놓은 글귀 하나다. "문제는 천만이라도 답은 마음 하나에 있다"는 뜻이다.

원명선원 참선 프로그램은...

대효스님이 직접 지도하는 제주 원명선원 ‘애쓰지 않고 저절로 깨닫는 조사선 수행’은 2박3일 또는 5박6일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조사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중 법문을 비롯해 와선과 행선 등 수행정진, 오름 행선 탐방, 선문 독송, 요가, 울력, 다도 등을 배우고 점검하는 시간들로 꾸며진다. 다음 프로그램은 2019년 1월5일 진행된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고(苦)땡 치유캠프’도 마련돼 있다. ‘고통을 끝내고 행복을 열어가자’는 뜻의 캠프로 어린이,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1박2일, 2박3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찰 예절 배우기, 좌선과 와선을 통한 집중력 향상, 몸을 살피는 요가 및 다도 등 내면을 살피고 고민하는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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