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원문의 ‘건곤’ 명칭 사용 
남성은 하늘처럼 존귀하고 
여성은 땅처럼 비천하다는
남존여비 여성차별 유교관
남녀평등 불교관 맞지 않아

사찰에서 사시에 올리는 불공 의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스님들이 불보살님을 청해 모시고 공양을 올리는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동참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축원이다. 그 이후 신중단에 공양을 물리는 퇴공 의식을 진행한다.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하는 것은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는 의식과 비슷하다. 그래서 부처님께 올린 마지 밥은 대중 공양에 고루 흩어서 함께하며, 때로는 이렇게 절밥까지 먹어야 불공을 마쳤다는 분도 계신다. 기도 때 올리는 과일이나 떡을 고루 나누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다음의 신중단에 공양물을 옮기고 하는 중단퇴공은 상물림에 해당한다. 예전에 양반들은 겸상하지 않고 각각 독상을 받았다. 때문에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순서에 따른 상물림이 있었다. 즉 같은 ‘식구(食口)’이기는 하지만, 위계에 따른 차등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가 불교에 수용된 것이 바로 중단퇴공이다. 그래서 중단에는 별도의 마지 밥이나 과일을 올리지 않고, 무조건 퇴공을 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불보살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공덕을 산출하는 스님들의 몫이라면, 신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공덕이 개인에게 돌아오는 축원문을 읽는 부분이다. 그런데 축원문을 작성하다 보면, 관계 항에 부모님을 건명과 곤명으로 적는 것을 알게 된다. 건명? 곤명? 무척 생소하다. 한자를 보면, 건명(乾名)은 ‘하늘 같은 이름’이라는 뜻이고 곤명(坤名)은 ‘땅 같은 이름’이란 의미다. 즉 부모님을 각각 하늘과 땅에 비유하는 셈이다. 그런데 하늘과 땅 하면, 생각나는 게 하나 더 있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남존여비의 유교적 여성억압이다. 실제로 건명과 곤명이라는 관계명은 이런 유교 문화를 조선불교가 수용한 산물이다.

불교는 세계종교 최초로 여성의 성직을 인정한 평등의 종교이자, 신분 계급을 타파한 개혁의 종교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유교에서조차 사용하지 않는 여성차별과 억압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어떤 분은 하늘과 땅은 상보적인 가치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또 요즘 시대는 땅값이 비싸니, 하늘보다도 여성이 낫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역> ‘계사전’ 첫 구절을 보면, “천존지비(天尊地卑) 건곤정의(乾坤定矣)” 즉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니, 건곤은 이렇게 위계가 정해졌다’라는 말로 의미를 분명히 한다. 실제로 김부식은 이러한 유교 인식으로 인해, 선덕여왕에 대한 평가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로 적고 있다. 이 구절은 <서경> ‘목서’에 나오는 것으로 여성 폄하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런 유교의 몰지각한 잔재를 불교가 수용해서 오늘날까지 사용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낯 뜨거운 일이다. 더구나 사찰을 찾는 신도들의 절대다수가 여성인 상황에서 말이다.

어떤 분은 그러면 관계명을 어떻게 쓰냐며 궁금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가하면 이는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일반 관공서나 서류 작성 때처럼, ‘부모-자녀’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된다.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 차별적인 관계명을 사용해서 불교의 위상을 저해하고, 부처님의 정신을 흐릴 필요는 없다. 이런 점에서 건명과 곤명이라는 관계명은 하루빨리 축출되어야 한다.

[불교신문3447호/2018년12월8일자]

자현스님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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