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기도 보시, 큰 공덕으로 이어질 것”

‘53기도도량’ 제32차 순례법회가 지난 11월9, 10일 양일간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앞마당에서 봉행됐다.

 

“생사도 모를 ‘삼계화택’에 살며
만산의 가을을 보고 있는 것도
우리 곁에 계시는 부처님 가피”

“자장ㆍ문수보살 이야기 전하는
이곳에서 간절한 기도 올리고 
꼭 문수보살 친견하시길 발원”

‘53기도도량’ 제32차 순례법회가 지난 11월9, 10일 양일간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에서 봉행됐다. 

늦가을, 회원들은 전국 각 법등에서 태백산 정암사로 순례길을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순례는 성불의 길처럼 멀고멀다. 이른 새벽 눈을 부비고 일어나 세수하고 배낭에 53기도도량 법요집과 공양미를 챙기는 것도 여간 성가시지 않다. 그러나 길을 나서는 순간, 불편한 마음도 부처님을 뵈러 간다는 기쁨, 가을의 정령이 머물고 있는 청아한 산사의 숲길을 마주할 수 있고 도반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내 새벽찬 바람도 상쾌해진다. 더구나 오늘은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의 한곳인 정암사로 가는 발걸음은 더 없이 가벼웠다. 

예로부터 태백산은 한국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꼭짓점에 있는 전국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서 ‘민족의 영산’으로 험하지 않고 가파르지 않은 산이다. 그 산속에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봄에는 산철쭉,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 가을에는 오색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신라시대 자장법사는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에 봉안했는데 이를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하고 있거나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 후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열린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가 기원이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지는 않으나 항상 사바세계에서 적멸의 법을 설하고 있음으로 전각(殿閣)보다 상위개념이다. 또한 진신사리는 부처님과 동일체로, 경건한 숭배의 대상이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때문에 불자들에게 5대 적멸보궁은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되고 있다. 

정암사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자장법사가 636년(선덕여왕 5)에 당나라에서 문수도량인 산시성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염주 등을 구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한곳이 정암사이다. 진신사리는 사찰 뒤편 함백산에 남아 있는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되어 있다. 정암사는 1713년(숙종 39)에 중수했으나 낙뢰로 부서져 6년 뒤 다시 중건하고 최근에도 두세 차례 중건했다. 사찰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 정암사의 열목어서식지(熱目魚捿息地)도 있다. 

회원들이 일주문에 도착하자 주지 천웅스님과 대중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회원들은 극락전 마당을 기도처로 잡고 육법공양,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나를 찾는 108참회기도를 여법하게 봉행했다. 

그리고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오늘 여러분들은 전국의 각 법당에서 새벽바람을 맞으며 태백산 정암사에 순례 왔습니다. 특히 지방에 계신 분들은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53기도도량 순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민족의 영산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늦가을의 정취는 정말 아름답지요. 오색단풍 속에 한번 몸을 내맡겨보세요. 찌든 세속의 모든 근심과 번뇌들이 다 달아나고 힐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32번째 선지식이며 낮과 밤을 관하는 바산바연지 주야신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이 우주에는 낮과 밤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불난 집인 ‘삼계화택(三界火宅)’에 살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모르고 내일도 생사를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적멸보궁인 정암사에 와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한 만산의 가을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늘 우리 곁에 머무시는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머문 이곳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한국의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입니다. 이곳에서의 기도발현과 보시는 세세생생 큰 공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열심히 마음을 다 담아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깊어가는 가을, 강원도 깊은 골짜기 정암사까지 찾아와주신 선묵혜자스님과 53기도도량 순례 회원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적멸보궁인 이곳 정암사는 신라 때인 645년 자장율사께서 수마노탑을 세우시고 ‘사십팔방지처(四十八房之處)’를 열었으나,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으므로 정암사(淨巖寺)라 이름 하였는데 자장법사와 문수보살이 늙은 거지로 나타나서 깨침을 준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3순례회원 여러분, 이번 순례길이 벌써 32번째라고 하니 문수보살은 이미 친견하셨나요? 아직 친견하지 못하셨다면 자장법사와 문수보살의 이야기가 전하는 이곳 정암사에서 간절한 기도 올리고 꼭 문수보살을 친견하시길 바랍니다. 

적멸보궁 정암사는 출가수행자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에게도 이름난 기도처요, 순례지이며 하나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니 부처님 향기로 가득한 청정도량 정암사에서 불심 가득 일으키시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삼백예순날 쉼 없이 정암사 도량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우리 회원들은 정암사 순례를 봉행한 뒤 기와불사와 직거래장터, 국군장병 초코파이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수여행사도 가졌다. 

네팔 룸비니에서 채화해온 평화의 불을 점등하는 회주 선묵스님(오른쪽)과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가운데).

생활 속 심신 행복 찾는 수행의 장
 순례의 근본적 이유 

‘성지순례’는 하나의 신앙여행이다. 성지순례를 완수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염라대왕의 약속도 있듯이 인도·티베트·일본 등 불교국가들은 ‘내생의 안락’을 발원하기 위해 순례를 나서며 이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청정한 세계에 들기 위함이다.
불교의 최대 장점은 ‘다생다사관(多生多死觀)’에 있다. 타종교는 한 번 태어나 죽으면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가는 ‘일생이사관(一生二死觀)’인데 반해 인간은 단 한번 태어나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쌓은 공덕에 의해 육도윤도를 하거나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사후(死後)세계를 믿지 않는다. 사람에게 이러한 내생(來生)관이 없다면, 한생을 제멋대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생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결코 죄를 짓지 못한다. 그래서 불교는 생(生)과 사(死)가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후세계가 없다면, 인간 또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내가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남을 위한 자비심도 생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이러한 세상은 한마디로 말해 황폐한 삶만 존재할 뿐이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사후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자신에게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죽음이 두려울지라도 마음만은 평온할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생사 문제는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때문에 우리는 순례를 통해 ‘생(生)’이란 무엇인가를 돌이켜 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여기에 성지순례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는 ‘육신과 마음’을 청정의 세계로 이끈다. 인간의 몸은 ‘육신과 정신’ 그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육신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몸의 주인은 바로 ‘마음’이다.
순례의 의미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시련을 주어 ‘마음’을 닦는 데 있다. 성지순례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되물음이며 성지는 곧 수행의 장소이기 때문에 인생의 행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미래에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에 보다 초연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다지게 하는 시간을 준다.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비록 고난의 여정이라 할지라도 순례를 나서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선묵스님 
군종특별교구장ㆍ도안사 회주

[불교신문3447호/2018년12월8일자]

선묵 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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