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절을 찾은 외국인 교환학생이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괴로운데 부디즘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마치 대답을 맡겨놓은 양 질문하였다. 영화 속에서 막 튀어 나온 사람처럼 비현실적인 눈을 가진 파란 눈의 외국인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뭇 진지하게 묻는다. 그 모습에 동서양 할 것 없이 고통의 문제는 같을 수밖에 없나보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를 미워해 본 감정이 내게도 있었기에 충분히 그녀의 고민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마음을 미움에 빼앗겨버리면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문은 닫히고 나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가는 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우리는 간이 굳어져가는 건 겁내 해도 마음이 굳어져가는 건 겁내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굳어가고 있다는 걸 자신이 모르기 때문이다. 간수치는 측정 가능하지만 마음수치를 읽어주는 기계는 없으니까.

상대가 문제인 것만 문제 삼느라 자신의 마음이 굳어지는 건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고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되기도 한다. 남 탓 할 땐 몰랐지만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돌덩이같이 되어버린 자기를 보는 일은 슬프다. 남에게 쏜 화살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와 독 씨앗을 뿌리고는 양분을 제공받는다. 자신은 다치지 않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믿음은 당장 보이지는 않기에 어리석음이 된다. 

상대를 탓하는 마음엔 자신은 괜찮다는 몹쓸 병이 같이 자란다. 그 남을 향한 비난은 마치 안전망인 것처럼 말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비난하는 자기는 멋지다는 착각을 동반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좋은 토양이 되어서 독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면역력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토양이 좋은 밭에서는 안 좋은 씨앗도 영양을 충분히 뽑아 열매를 만들어내는 기적이 일어나는 법, 새로운 마법을 기대해 볼만하다.

미워하지 말라고 해서 상대를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에게 그의 삶을 살도록 자유를 주는 거다. 그는 그럴 자유가 있으므로. 그러다보면 나의 미움은 힘을 잃고 저절로 없어질 터이다. 늘 비어있는 거울을 내 마음의 근본으로 삼아지니 나는 늘 자유이다. 

[불교신문3447호/2018년12월8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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