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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름답고 굳건한 신계사[특별기고] ‘금강산 관광’ 20돌 기념 참배기
  • 제정스님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승인 2018.12.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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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스님이 직접 찍은 금강산 신계사 전경.

설레는 새벽, 신나는 발걸음은 금강산으로 간다. 늦가을 동트기 전에 모두들 연지동 현대그룹빌딩 앞으로 모였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전 통일부장관들, 여러 국회의원들, 주요 언론사 기자들, 사업자 등 백 명이 넘는 관계자들은 가슴 벅찬 표정들이다.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던 대화관광버스 4대는 분위기 좋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내달린다. 한강을 건너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에 기쁜 마음과 무거운 회상들이 떠오르는 아침햇살과 묘하게 클로즈업 되는 이 시간! 얼마 만에 가는 금강산 길인가?

개인적으로는 2015년 10월에 다녀왔으니 3년 만에 가는 걸음이지만,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 20돌을 기념하는 날이니 감개가 무량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오늘 11월18일이다. 10여 년 전 기억들의 파노라마가 시작된다. 그 얼마나 사연들이 많았으랴. 대부분 글로써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언어로 형용하지 못하는 감성들도 너무나 많았다. 그 고생스럽고 아름다운 회상들이 오늘 새벽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건봉사 지나 육로로 가는 길
긴장감 적어진 군사분계선
구룡연 옥류담… 다시 본 ‘명소’
신계사 낙성 당시 추억 ‘솔솔’

지금이야 시원한 고속도로로 힘차게 달려가지만, 금강산관광을 가거나 신계사 복원불사를 하던 당시 인부와 자재들은 양평 홍천 인제 고성을 거치는 국도를 따라 이동해야 했다. 금강산을 오가며 홍천 인제의 국도변 어느 곳에서 옥수수를 사먹던 그 맛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특히 금강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사먹던 옥수수가 얼마나 꿀맛이었던지. 내가 금강산 신계사 밭에 심었던 옥수수는 허리춤까지 자라지도 않았는데 인제를 지날 때 그 굵직하고 알찬 옥수수를 팔던 모습들이 색다르게 느껴지곤 하였다. 오늘 가는 이 고속도로는 그 추억만 영글게 담고 달려 갈 뿐이다.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 고갯길은 참으로 여러 가지 회한의 길이였다. 삭풍이 강하게 불고 산골짜기마다 냉기가 몰아치며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고개를 넘고 굽이를 돌아오던 추억의 길이요, 홀로 가던 외로움의 진부령길이다. 어느 산자락을 돌아서면 소나무가 가득하고, 어디에는 온 산에 자작나무가 한 가득이다. 나무의 피부인 껍질은 선녀의 피부처럼 하얗기에 석양빛에 드러낸 그 정갈한 모습은 겨울 산의 매력이며 대장관의 파노라마이다.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사진기에 그 모습을 담는 이유는 혼자 즐기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갇힌 프레임에서는 그 풍광의 정서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슴으로 읽어야 제대로 자작나무를 알 수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원택스님(오른쪽)과 조불련 소속 신계사 진각스님이 신계사 대웅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진부령을 넘어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면 건봉사 입구를 지나게 된다. 금강산 건봉사이니 진부령을 넘어설 때 이미 금강산 자락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잔인한 전쟁, 참혹한 비극의 6.25 때 건봉사는 그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가! 여기쯤에서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금강산 버전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답은 소나무에 있다. 그 옛날 겸재가 그렸고, 수많은 시인들이 써 놓은 시에 솔향처럼 녹아 있는 우리소나무들이 금강산임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송!

동해의 아침햇살이 상서롭게 비쳐주고 금강내기라는 영동지방 특유의 강한 봄바람이 잡스러운 군살을 떨쳐낸 조각 작품이다. 강건하면서도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고고한 금강송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역에 들어선다. 가히 금강송들이 자라는 곳부터라야 금강산이라 할 것이다. 금강산 지역은 해풍의 짠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라도 거무스레한 해송이 아닌, 맑고 붉은 금강송이 자란다. 나는 4년 동안 금강산 지역에서 살면서 그리고 수 없이 해금강 쪽에 가보았지만 바닷가에서도 해송을 본 적이 없다. 바닷바람을 이기며 자라온 만큼 강인한 금강송부터가 그 산 금강산을 닮아 있다.

이런저런 추억의 상념들 속에 잠겨있는 동안 버스는 통일전망대를 지나 동해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하였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이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것은 남과 북 유엔사 3자간의 약속된 시간에 통과하여야 혹시 모를 충돌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미 이곳에 들어오면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군인들의 복장이나 장비, 표정들이 전혀 다른 지역에 들어와 있음이 실감난다. 훈련이 아닌 실전이고 실제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이야 건물도 새로 짓고 도로도 다시 건설하여 도회지의 어느 변두리 같지만 14년 전인 2004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었다.

 

금강산 구룡연 코스를 등산하는 제정스님.

그해 어느 날에도 비무장지대 안에는 억새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동해 바람에 온 산의 으악새들이 은빛파도로 격하게 출렁이는 날, 나는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산자락을 따라 꼬불꼬불한 비포장의 군사도로는 북으로 향하고 있었고 은빛 산야는 적막감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억새꽃이 일렁이고 동해바다에는 파도가 출렁이어도 오히려 나의 가슴은 침묵으로 침잠할 뿐이었다. 군사적 대치의 현장이고 길숲에는 지뢰 표시가 수없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나는, 가고 있었다.

이러했던 육로로의 남북소통이 점차 나아졌다. 거의 직선으로 쭉 뻗은 아스팔트 포장길과 남북철도가 연결되어지는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3년 전 금강산에 갈 때는 도로 양편으로 칡덩굴과 싸리나무들이 길의 반쯤을 덮고 있는 황량한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이산가족 상봉 준비를 위해 새롭게 포장까지 해놓았다. 도로의 분위기는 금강산관광 전성기처럼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정결하게 유지된 절
조선불교도련맹 스님들 덕분
중간 중간 기와 보수한 흔적
지붕에 올라가 폭설 치우며
“목숨을 건” 도량관리 ‘눈길’

오늘은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을 시작한지 20년(1998~2018)이 되는 역사적인 기념일이다. 처음은 뱃길로 꿈을 실현시켰지만 오늘은 꿈길 같은 아스팔트길을 가고 있다. 내가 4년간 남북을 오가며 보던 장면이 이번에는 사라지고 없었다. 최단 거리의 남북군인들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군사분계선이란 가상의 라인일 뿐이고 남북방한계선에만 철조망이 굳건히 쳐져 있는데 국민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마치 군사분계선에 엄청나게 살벌한 철조망이 설치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은 아니다. 가상의 선(線)일 뿐이다. 남북을 오가다 보면 여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이 늘 펼쳐져 왔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북측 당국이 세운 신게사 표지석

원래의 협정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km씩 물러나 남북방한계선을 두기로 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쌍방이 밀고 들어가게 되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가장 최단거리인 400m 거리를 두고 완전무장한 남북 군인들이 착검과 탄약장전을 하고 대치 중이었다. 물론 관광객이 출입하는 시간에만 그렇게 단거리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살벌한 분위기임에 틀림없다. 일촉즉발처럼 보인다. 한 숨에 내달리면 도달할 거리에 남북의 청년들이 총칼을 마주대고 있는 것이다. 1분이면 갈 거리를 60년이 지나도록 못가고 있는 현장이다.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거울같이 맑은 호수 감호(鑑湖)를 지나면 북측의 출입국관리소가 나온다. 길옆에는 철길이 동무처럼 같이 길을 따라 나서고 있다. 감호역이 10여년 전에 완공되었지만 철마는 오늘도 녹슬고 있구나...북측 CIQ에는 아는 인사들이 많이 나와서 반긴다. 신계사에서 같이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며 남북공동 복원불사를 했던 사람들이 나와 있다. 2007년10월 13일에 낙성식을 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건강하게 다시 본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즐거운 인연이다.

금강산을 오르던 도중 북한예술단과의 단체사진.

18일 오후 현대아산과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공동주관으로 문화회관에서 의미 깊은 기념식을 하였다. 아울러 금강송으로 기념식수를 했음은 물론이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고 정몽헌 회장의 유품 송덕비 옆에 아름다운 금강송을 소중하게 심었다. 그리고 교예단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졌던 문화회관에서, 북측 통일음악단 단원들의 공연을 즐겁게 관람하며 모두들 즐거워했고 통일의 의지를 되새겼다. 온천에서는 따뜻하게 몸을 담그고 피로를 녹이면서 금강송들을 감상하는데, 아, 11년 만이구나. 저녁에는 금강산호텔에서 남북공동주관으로 만찬이 베풀어졌다. 모두들 함박웃음 건배사에만 상당한 시간을 배려해야 했다. 이렇듯 즐거운 금강산의 밤은 아름답게 깊어 갔다.

다음날인 19일은 모두들 선녀를 만나러 가는 나무꾼처럼 신나 있었다. 수구넘이 고개를 넘으니 금강송 군락이 환상적이다. 신계사부터 참배하고 구룡연을 다녀오면 좋았을 텐데, 산행부터 먼저하고 내려오니까 일정이 늦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산행에서도 맨 먼저 앞서서 올랐다. 가고 오면서 어제 공연을 하였던 통일음악단 단원들과 얘기도 나누고 구룡폭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앙지대 금수다리 옥류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은사류 관폭정 구룡폭포 모두들 잘 있구나.

신계사에는 오랜만에 참배하는 길이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산행을 못하고 목란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민추본 본부장 원택스님과 북측 안내차량을 빌려 타고 신계사에 들어갔다. 절은 생각보다 정결하게 유지 관리되고 있었다. 조선불교도련맹의 두 스님의 노력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외금강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기와가 괜찮을지 걱정했었는데 염려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양호했다. 10수년이 지난 목조건축물치고는 보수할게 많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도량을 돌면서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신계사 기와

금강산에는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4년이라는 세월을 금강산에서 보냈는데, 격년으로 폭설이 내렸다. 신계사에서 장전항 숙소까지는11km 떨어져 있으니 매일 왕복 22km가량 출퇴근 한 셈이다. 눈이 내리면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전쟁이 시작된다. 밤새워 장비들로 눈을 치워야하기 때문. 숙소에서 그래도 온정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 문제는, 나머지 5km를 허리춤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걸어서 신계사까지 가야 한다는 점이다. 수구넘이 고개를 넘고 동석동입구를 지나 신계천을 따라 오르는 눈길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낭만이자 고난의 역경이다. 폭설과 금강송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금강산에 사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신계사에 도착하면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하루 종일 그 많은 눈을 치워야하기 때문이다. 북측 경비원동무들이 겨우 다닐 정도의 눈을 치워는 놓지만 한계가 있다. 문제는 지붕이다. 대웅보전을 예로 들면 기둥하나가 적심토 기와 등으로 약 10톤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데, 만약 1m가량의 눈이 왔다면 나는 하루 종일 심각한 걱정을 해야만 한다. 혹시 건물에 하중으로 인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나? 기와가 눈으로 인한 쓸림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나? 이런 걱정으로 봄날을 기다려야 했다.

금강산 구룡폭포

오늘 신계사에 계신 스님들과 관리원들은 그 기간에 얼마나 고생스럽게 도량을 관리하고 유지했는지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비록 소나무로 조경을 하는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북측 방식의 정갈하고 깔끔한 도량 및 정원관리를 하고 있었다. 거기 스님들에게 폭설에 기와관리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눈이 오면 지붕에 올라가서 눈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미끄러운 눈 덮인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운다고? 목숨을 건 도량관리이다. 중간 중간 기와를 수리한 개와의 흔적들이 보였다. 내가 떠나올 당시 어실각 뒤편에 남겨두고 온 기와가 모두 사용되고 없었다. 눈으로 인한 설해의 피해에 모두 사용한 것이다. 이제는 교류를 활성화하여 유지 보수할 기와도 보내고 다른 불사도 해야 할 시기이다. 금강산 관광 20돌에 즈음하여, 불통의 어두웠던 세월을 떨쳐내고 신계사 부처님의 서광을 받으며 금강산 산문을 들어서야 할 시절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대웅보전 극락전 축성전 칠성각 어실각 산신각 석탑 만세루 수승전 최승전 유마암터 창고 해우소 과수원 등 건축과 단청, 발굴과 토목공사 어느 하나도 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법당앞 만세루에서 집선연봉과 금강송 군락들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본다. 4년간의 감격들이 봄꽃처럼, 단풍처럼, 눈발처럼 지나간다.

 

텅 빈 누각에서 달을 기다리며

虛樓待月(허루대월)

 

텅 빈 누각에 홀로앉아 달뜨기를 기다리며

한 밤중의 샘물소리 솔바람소리

기다리고 기다림이 다해도 의지할 곳 없더니

차가운 빛! 낮같이 온 산 가득 밝구나

獨坐虛樓待月生 泉聲松?正三更

待到待窮無待處 寒光如晝滿山明

虛應堂(허응당) 普雨(보우) 

[불교신문3447호/2018년12월8일자]

제정스님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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