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상담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단지를 나누는 빨강상담소 어르신.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서 나왔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지요? 이거 한번 읽어 보세요.” 서울 종로구 안국역 개찰구 앞을 오가며 ‘고민 해결…’이 적힌 전단지를 건네던 한창천(70) 어르신이 계속된 거절에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젊은 사람들이야 워낙 바빠야지”하면서도 또 다시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한창천 어르신 넉살에 길을 지나던 동년배 어르신은 먼저 다가와 두 눈 질끈 “감기 조심하세요” 친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영하권 추위에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던 오늘(11월30일) 안국역 1·6번 출구 통로 사이, 어김없이 ‘빨강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빨강상담소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위탁‧운영하는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찾아가는 상담소’다. 안국역을 비롯해 노인 문화 메카로 알려져 있는 종묘와 탑골공원 일대서 매주 월수금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운영되는데 평균 4명 이상 어르신이 상주하며 1대1 개인 상담을 맡는다. 폭염이나 혹한기에는 날씨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때도 있지만 많을 때는 줄을 서 하루 70회까지 상담이 이뤄질 때도 있다.

빨강상담소는 상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노년의 성' 문제 관련 질문과 답변이 적힌 게시판.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찾아가는 상담, '빨강상담소' 봉사자 어르신이 행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기 쉽지 않지만 빨강상담소는 예외다. ‘배우자가 없어도 성생활은 하고 싶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굴뚝 같다’, ‘자녀들이 재산에만 관심을 보인다’ ‘홍보관(떴다방)에서 비싸게 물품을 강매 당했는데 환불은 어떻게 하냐’ 등 직설적이면서도 현실적 질문이 이어지고 관록 있는 답변이 오간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 부부갈등에서부터 일자리와 상속 문제를 다루는 법률상담까지 사례에 따라 상담이 세분화 및 전문화 돼 있는데다 1차 상담에 그치지 않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 의사, 변호사 등 관련 전문가와 연계해 2차 심층상담까지 다리를 놔주기 때문에 상담소 존재를 아는 사람은 한번에 그치지 않고 수차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상담을 맡는 이들도 모두 상담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로 웬만한 전문가 못지 않다. 2017년 3월 빨강상담소가 운영을 시작할 때부터 상담 봉사를 해왔다는 정안명(65) 어르신은 상담 관련 자격증만 12개. 유기견을 돌봐주던 지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는 정안명 어르신은 현재 60대 이상 노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고독’에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가장 괴로운 것이 뭔지 아세요? 이야기 할 데가 없다는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친구도 사라지지요. 배우자는 가버리지요. 세상이 텅 빈 것 같은 외로움은 자식도 몰라요. 사소한 일에도 불쑥 화가 치밀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마음에 막 상처가 나요. 그런데도 어디 호소할 데가 하나 없어요. 나이들어 늙고 병드는 것도 서럽지만 그 보다 마음 나눌 곳 하나 없는 게 가장 서럽답니다.”

상처가 나면 그 위 쓱쓱 바르곤 했던 옛적 빨간약처럼, 공감과 진심 어린 말 한 마디, 따뜻하게 맞잡은 두 손에 생채기 난 어르신 마음에 새살 돋는다.

11월30일 만난 빨강상담소 상담가 어르신들.
빨강상담소 버스. 폭염이나 혹한기 날씨에도 버스 안 보다 밖에서 임시 상담소를 차려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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