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교내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에 이어 걷기명상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한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늦가을, 올해의 학교 풍광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가을비가 적당히 내리고 날씨도 예상보다 포근해서였을까. 형형색색의 단풍들 덕분에 눈 호강을 참 잘했다. 보름 전 쯤 금요일 아침에 등교하는 파라미타 친구들은 제각기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법당으로, 법사실로 모여들었다. 저녁에 있을 교내 템플스테이를 위해 조별로 먹거리를 준비하고 개인용품을 챙겨오는 중이었다. 덕분에 냉장고는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이 가득 찼고, 법사실도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 각종 그릇, 옷 보따리들로 빈 공간을 채웠다.

파라미타의 후원을 받아 인성교육 프로그램 기본과정인 ‘참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학교에서 1박2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 달 말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고민은 학생들을 어떻게 하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학생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것은 먹기와 놀기이다. 먹기 가운데는 고기 먹기가 제일인 것은 남녀 공통일 것이고, 남학생들의 놀기 중에 단연 최고는 축구다. 다만 밤에는 어둡고 쌀쌀한 관계로 강당에서 족구와 배구를 하기로 했다.

행사 날짜가 다가오자 결재를 올리고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준비하기 위해 후배 가연 법사님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먹이기 위해 제일 먼저 삼겹살을 주문하고, 피자도 예약했다. 먹을거리를 살 때에 괜히 마음이 설레고 즐거운 건 동료 가연 법사님의 표정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더 큰 즐거움 때문이리라.

얼마 전 금요일 오후2시 법당에 모인 40여 명의 파라미타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입재식을 진행했다. 교장선생님 격려말씀과 간략한 설법을 마치고 기념촬영부터 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더없이 밝고 즐거워보였다. 오리엔테이션과 전통문화 체험 다도 교육, 사랑의 기술 행복수업 특강, 저녁 예불에 이어진 보드게임은 처음엔 낯설어 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이내 분위기가 무르익어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보드게임을 마치고 학교에서 벌린 삼겹살 파티는 전통사찰 템플스테이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죄송하지만 즐거운 아이들의 축제였다. 아마도 1인당 3인분 이상은 족히 먹었으리라. 쌈을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고, 김치를 곁들여 먹고, 밥을 볶아먹고, 선생님들에게도 한입씩 넣어드리고 한껏 즐기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배불리 먹고 나서 강당으로 모인 우리들은 네 팀으로 나누어 족구, 배구, 배드민턴 등을 즐기며 한껏 젊은 기운을 발산했다. 두어 시간 쯤 뛰었을까 어느 새 아이들은 또 배가 고프단다. 법당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또 다시 먹는 파티, 피자를 즐겼다. 

어느 날 파라미타 회장 승민이와 부회장 명현이가 나에게 던진 한 마디가 떠오른다. “법사님! 우리는 왜 이렇게 바빠요?” 그랬다. 우린 참 바쁘게 지내왔다. 종립학교의 파라미타 학생들은 좋은 인연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봄부터 늦가을까지 파라미타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수많은 불교 활동과 행사에 참여하고 정진해 왔다.

1박2일을 마치면서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예불을 모신 우리는 교정을 거닐며 걷기 명상을 했다. 파릇한 잎사귀들이 단풍이 되어 붉은 카펫을 만들기까지 그렇게 1년을 잘 지내 온 우리 학생들에게 1박2일의 여정이 잠시나마 축하와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면 참 다행이겠다.

[불교신문3445호/2018년12월1일자]

이학주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  영석고등학교 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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