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체험 경지를 직관적 시각세계로 표현

채움 비움 수행 필력 어우러져 
절제된 미와 파격이 빚은 작품
당나라 때 선종과 더불어 풍미
우리나라 조선 중기 이후 유행 

사찰 앞 상점에 가면 왕방울만한 눈에 털이 더부룩한 강렬한 인상의 선사를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달마도이다. 그런가 하면 대웅전의 의 외벽에는 한산과 습득의 고사, 동자와 소를 주제로 그린 십우도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선종의 이념이나 선종의 조사, 그와 관련된 소재를 다룬 일련의 불화로, 선화(禪畵) 또는 선종화(禪宗畵)라고 한다. 이 그림들을 선종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종의 전법(傳法)이 직관적으로 사자상승(師資相承)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체험의 경지를 직관적인 시각의 세계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선종화는 처음에는 선승(禪僧)들이 수행 중의 여가에 주로 그렸으나 선가적(禪家的) 내용이나 사상 등이 사대부들의 사유 방식과 연결되어 감상화로도 크게 발전했다. 이 경우 수묵 위주로 감필(減筆)의 간일하고 조방한 화풍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달마대사를 비롯하여 한산(寒山)·습득(拾得)·포대(布袋)·나한(羅漢) 등 조사상과 출산석가(出山釋迦)·십우도(十牛圖) 등이 많이 그려졌다. 중국 당나라 때 선종의 대중화와 더불어 유행하였으며, 남송 때 전통이 확립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다. 

선종화 가운데 가장 많은 주제로 그려진 것은 중국 선종의 제1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 470?〜536)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달마는 남인도의 향지(香至)라는 대바라문 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어려서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라는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의 명령에 따라 3년에 걸쳐 배를 타고 캄보디아를 거쳐 527년 9월 1일 중국 광주에 도착하였다. 

당시 왕이었던 양무제를 접견하고 문답을 나누었으나 양나라가 인연처가 아님을 알고 낙양 동남쪽에 위치한 숭산 소림사(少林寺)로 가서, 숭산의 오유봉 정상 동굴에서 9년간 좌선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일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벽관(壁觀) 바라문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9년 동안 참선 삼매에 빠졌던 동굴을 달마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선종 화승들은 오도(悟道) 목적의 자기 수양의 일환으로 달마의 전기 중 특기할 만한 사건을 그리기 시작했다. 

달마가 양나라를 떠나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 위(魏)의 수도인 낙양 동쪽의 숭산 소림사(少林寺)로 왔다는 고사를 그린 <달마절위도강도(達磨切蘆渡江圖)>, 달마가 바위 또는 소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참선하는 모습을 그린 <달마벽관도(達磨壁觀圖)>, 달마가 가죽신 한 짝만 신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척리서귀(隻履西歸)의 고사를 도해한 <척리달마도(隻履達磨圖)> 등이 있다. 

달마를 주제로 한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에 제작된 <육조사도(六祖師圖)>[일본 코잔지(高山寺) 소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에 선종의 유행으로 다수의 달마도가 그려졌음을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중기의 화원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재빠른 필법과 간략한 필치로 초승달 같은 눈과 주먹코의 달마대사를 단숨에 그린 듯 호쾌하다. 

달마에게 처음으로 입문을 청한 혜가(慧可, 487〜593)가 뜻이 얼마나 깊은지를 질문받자 구도의 열정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한 팔을 잘랐다는 고사를 도해한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도 대표적인 선종화 중의 하나이다. 혜가는 달마의 법통을 이어 중국 선종의 2조(二祖)가 된 인물로, 혜가단비의 고사는 선승화가들에게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암굴 속에 앉아 참선하는 달마의 등 뒤에서 자신의 팔을 잘라 들고 선 혜가를 그린 혜가단비도는 법당 안의 좌우 측면벽이나 후불벽 뒷면 또는 건물 외벽에 주로 그려졌다. 청도 운문사 비로전 후불벽 뒷면의 <혜가단비도>, 보성 대원사 극락전 내 오른쪽 벽면의 <혜가단비도>, 양산 통도사 응진전 외벽의 <혜가단비도> 등이 대표적이다. 

한산습득도, 19세기 작품으로 청주 월리사 벽화이다.

이밖에 중국 승려였던 습득(拾得)과 시인이었던 한산(寒山)을 그린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가 있다. 습득은 항상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던 풍간(豊干)이 주워다 사원에서 길렀는데, 사원 부엌에서 일하며 은둔했던 친구 한산에게 남은 밥을 갖다 주었다고 한다. 한산은 천태산에 살았던 은둔 시인으로 한암(寒巖)의 깊은 굴에 살며 3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때로 사원의 뜰을 몇 시간 동안 거닐면서 가끔씩 환성을 지르거나 혼잣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웃고 손뼉을 치다가 사라졌다. 후에 한산과 습득은 보살의 화신으로 간주되어 선종 사원에 자리 잡았으며, 선종화의 소재로도 많이 그려졌다. 한산은 보통 글자가 적히지 않은 빈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서있고, 습득은 마당 빗자루나 나뭇잎을 손에 든 모습 또는 한손에는 긴 빗자루를 들고 한손으로는 보름달을 가리키며 앉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한손으로 달을 가리키는 습득을 그린 이정의 <문월도(問月圖>(간송미술관 소장)와 이징의 <문월도>(개인 소장), 긴 지팡이와 봇짐을 땅에 내려놓고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쉬는 습득을 그린 김홍도의 <습득도>(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대웅전의 외벽에 자주 그려지는 십우도(十牛圖) 또한 선종화라 할 수 있다. 십우도는 선불교에서 견성에 이르는 참선 수행의 과정을 10개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것으로,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 

십우도 가운데 ‘기우귀가’.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하여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그림은 모두 10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①심우(尋牛)는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써 공부에 임하는 것을 상징한 것으로,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②견적(見跡)은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는 것으로 소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으로, ③견우(見牛)는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하며 동자가 멀리서 소를 발견하는 모습으로, ④득우(得牛)는 아직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찾는 견성(見性)으로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⑤목우(牧牛)는 삼독의 때를 지우는 보임(保任)의 단계로 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두더라도 저절로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끔 길들이는 모습으로, ⑥기우귀가(騎牛歸家)는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⑦망우존인(忘牛存人)은 마지막 종착지인 심원(心源)에 도달하면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애써 찾은 소는 온데 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는 모습으로, ⑧인우구망(人牛俱忘)은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 것으로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텅빈 원상의 모습으로, ⑨반본환원(返本還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으로 텅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모습으로, ⑩입전수수(入廛垂手)는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으로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 으로 묘사된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깨닫는 선종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선종화 속에는 팔만사천가지의 설법과 팔만사천가지의 심인(心印)이 들어있다고 한다. 절제된 미(美)와 파격이 빚어낸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자 참된 수행과 필력이 어우러져 그림을 통해 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종화야말로 화선일여(畵禪一如), 선묵일여(禪墨一如)의 참된 경지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444호/2018년11월28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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