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문밖 어디에도 숨지 않았거늘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장경혜릉(長慶惠稜)선사가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고산(鼓山)에서 옵니다.”
“고산에는 문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구절 즉‘불과석문구(不跨石門句)’가 있다고 들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일찍이 고산신안(鼓山神晏)선사는 문하의 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산에게는 불과석문구(不跨石門句) 즉 문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구절이 있으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 

이 물음에 수없는 납자들이 입술을 놀리다가 주장자로 입을 얻어맞거나 할(喝)을 하다가 등짝을 방(棒)으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단도직입으로 씹어서 부수려고 하다가 이가 시려 포기하거나 아니면 치아가 그대로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선사는 사정없이 꾸짖었습니다.

“이 물음은 반드시 본분사를 깨달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알 수 있으니 아무렇게나 대답하지 말라.”이후로 ‘불과석문구’는 많은 공부인의 지남(指南)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존께서 어느 날 문수가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수여! 어째서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가?”
이에 문수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번도 문밖에 있는 것을 보지 않았거늘 어찌 저로 하여금 ‘문안으로 들라’고 하십니까?”

문밖을 넘어가지 않는 구(句)라고 하는 것은 본래자리를 지킬 뿐 밖의 경계에 미혹되지 않는 본분사(本分事)를 말합니다. 근본당처는 털끝만큼도 무엇이 붙고 오염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문밖과 문안을 구별 없이 어느 곳이나 자유자재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분별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감혜근(佛鑑慧懃)선사는 “산승의 문하에서 한 사람은 문밖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문 안에 있다. 하지만 또 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숨지 않는데 불안(佛眼)으로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如何是不跨石門句
石門無鎖亦無關

어떤 것이 석문을 넘어가지 않는 구(句)인가?
석문에는 자물쇠도 없고 빗장도 없다.

이제 일주문을 석문삼아 그 문지방을 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구순(九旬)의 삼동결제입니다. 일주문에는 모양 있는 자물쇠와 문빗장은 없지만 결제대중은 모양 없는 자물쇠와 문빗장으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문관은 문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문입니다. 이처럼 일주문은 자물쇠와 문빗장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물쇠요 문빗장인 것입니다.

우리를 가두는 것이 자물쇠와 문빗장이기도 하지만 또 그것을 통해 문밖으로 나가는 대문이 되기도 합니다. 90일 이후에도 빗장이 될 것인지 대문이 될 것인지 하는 것은 오직 우리에게 달려있는 일입니다. 또 결제가 제대로 된 결제가 된다면 매일 매일 문내(門內)가 문외(門外)와 다름없이 자유롭겠지만 결제가 제대로 된 결제가 되지 못한다면 하루하루마다 문내(門內)에 스스로를 억지로 가두게 될 것입니다. 문내와 문외가 둘이 아닌 도리를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오직 애써 정진해서 공안(公案)을 타파해야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내와 문외의 구별이 필요 없는 대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得與麽七穿八穴
得與麽十字縱橫

이렇게 사방천지 어디에나 통함을 얻었고
이렇게 네거리 어디에나 막힘없음을 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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