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할아버지, 며칠 전에 절에 갔더니 수능관음기도가 한창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언니가 “스스로 깨닫는 게 불교인데, 스스로 공부하면 되지 관음기도라니…”하면서 기복불교라고 혀를 찼어요. 기복불교는 나쁜 건가요?

제 할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엎드려 복만 비는 것이 문제겠지
탈 없이 살았으니 고맙다 절하고 
원하는 것 이뤄지게 기도해야지

A 글쎄다. 수능을 앞둔 어머니가 아이가 공부 열심히 하기를 빌고,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을 흔들림 없이 펼쳐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가 문제가 될까? 기복, 복을 빈다는 말인데 복은 행복을 가리키는 말일 테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 그런데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 행복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한자로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말이거든.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있는 말이 아니라서 그럴 거야. 그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을 빈 게 아니라 안심하고 안락하기를 빌었어. 안심은 마음 놓음이고 안락은 마음 놓고 누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야. 행복처럼 막연하지 않고 한결 쉽게 다가오지 않니? 

할아비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다가 장독대에 올려놓고 빌었어. 그리고 음력초하루나 보름에 절에 가서 정성을 드리고. 그때는 기도보다는 정성 드린다는 말을 즐겨 썼어. 정성이란 지극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려는 참답고 성실함을 일컫는 말이야. ‘힘껏 살고 있지만 슬기롭지 못해 모자라는 구석이 적지 않으니 모자라더라도 보듬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는 거야. 어머니께 날마다 뭘 그리 열심히 비느냐고 여쭌 적이 있어. 어머니는 어제 식구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고맙다고 빌고, 식구들이 튼튼하기를, 오늘도 일을 나가는 아버지는 보람차게 일하고 탈 없이 돌아오시기를 비셨대. 우리들에겐 공부 열심히 하고 동무들과 잘 어울리며 탈 없이 돌아오기를 빌고. 할아비도 아침예불 때마다 식구들과 할아비와 인연이 닿은 모든 이들이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평안하기를, 자연이 거기 그대로 있기를,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빌고 있어. 

이토록 비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부처님이 출가를 해서 오랜 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도, 한평생을 맨발로 누리 곳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하지고 않으셨을 것이야.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이 기복신앙을 꼬집는 까닭은 제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부처님이나 예수님 전에 엎드려 복만 비는 것을 문제 삼는 걸 거야. 복을 빌든 마음 놓기를 빌든 무엇을 빌 때는 깊이 마음을 모아 모두 자연을 비롯한 이웃 덕분으로 이제까지 큰 탈 없이 살았으니 고맙다고 절부터 올려야 해. 그 다음에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간절히 빌어야지. 덧붙여 참답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비는 사람을 탓할 이는 아무도 없을 거야. 

[불교신문3441호/2018년11월17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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