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에는 성품과 수행가풍이 너무나 대조적인 J스님과 S스님이 계신다. 한 분은 일단 목적지를 정하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직진형’이다. 다른 한 분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여기저기 둘러볼 것 다 보면서 가는 분이다. 가끔 시내에 가면 시골사람이 도시에 막 올라온 것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신기해 하셨다. ‘천진’ 그 자체였다. 나는 두 분을 ‘직진스님’과 ‘천진스님’으로 부르며 웃기도 했다. 

어느 날 천진스님께서 직진스님께 바람 쐬러 간다며 자동차를 좀 빌려달라고 했다. 직진스님은 그러시라며 열쇠를 드렸다. 잠시 후 법당에 기도하러 가는 직진스님께 천진스님이 황급히 달려왔다. “스님, 잠깐만요. 차가 나가려면 ‘디귿’으로 해야 됩니까?” 직진스님은 갑자기 멍해졌다. “디귿이라구요? 뭔 말씀이세요?” 

알고 보니 출가 전 수동변속기로 자동차를 몇 번 몰아본 것이 전부인 천진스님이 출가 후 처음 운전석에 앉았는데, 변속레버에 쓰여 있는 ‘D’라는 글자를 보고 당황하여 엉겁결에 ‘디귿’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대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후 천진스님의 별호는 다시 ‘디귿스님’으로 바뀌었다. 

두 스님의 방 사이 기둥 앞에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나무토막이 놓여있다. 서로 다른 속도로 가고 있지만 한 방향을 향해 가며 탁마해가는 두 스님의 공부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깨달음이란 목적지는 같지만 근기와 방편에 따라 빠름과 늦음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과 선지식들께서 먼저 이루시고 세워놓은 이정표를 따라, 후학들은 믿고 포기하지 않으며 묵묵히 가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옆에 가는 사람이 나보다 앞서가거나 더디게 온다고 투덜대지 말라. 그대의 인생 내비게이션에 경유지를 ‘지금’으로, 목적지를 ‘행복’으로 설정하라. 그리고 변속레버를 ‘디귿’에다 놓고 ‘직진’으로 계속 가다보면 가는 곳곳 행복의 땅을 지나게 될 것이다. 속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불교신문3441호/2018년11월17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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