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총무원장 취임사에 담긴 의미

최다 키워드 ‘책임’ 그리고 ‘공동체’
‘소통’과 ‘화합‘이 구체적 방법
기관 법인에 대한 권한 이양
종단 조직개편 시사
정부의 일방적 공원법 개정 비판
단호한 모습도 눈길

문투는 전반적으로 무거웠다. 일례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책임’이었다. ‘책임감’ ‘책임성’까지 포함하면 총 6번. ‘막중한 책임감’으로 시작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끝나는 글이다.

알다시피 원행스님은 종단사 초유의 총무원장 불신임 이후에 당선된 총무원장이다. 축하를 마음껏 하기도 받기도 주저된다. 본인 스스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솔선하기도 했다. 사태를 겪으며 불교의 위상도 적잖이 다쳤다. ‘불자 300만 감소’라는 충격파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정부와의 관계도 껄끄럽다. 누구라도 기대감보다는 부담감이 앞설 만한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어렵고 답답한 만큼, 내딛는 한 걸음에 숙고와 성심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이미 총무원장 스님은 취임법회 이전에도 ‘엄중한 현실’을 줄곧 환기해 왔다. 집행부 스님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독려했다. ‘본래 자신을 결코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는 스타일’이란 게 총무원장 스님에 대한 보편적 인물평이다. 

곧 책임이란 낱말의 반복은 하심(下心)의 반복으로 읽힌다. 최대한 몸을 낮춘 어조는 “겸허하고 진중하게” 산적한 문제들을 차근차근 합리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아울러 종단 운영에 ‘책임이 있는’ 스님들에게 공심(公心)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레토릭(rhetoric)'으로도 해석된다.

취임식을 마친 후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취임식이 열린 조계사 대웅전 앞에 자리 하지 못하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앞에서 영상으로 취임법회에 참관한 신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소통’과 ‘화합’이 각각 5번으로 ‘책임’의 뒤를 이었다. ‘책임’을 다 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기에 자주 등장한다. 총무원장선거 당시부터 공약으로 제시했던 ‘소통과 화합위원회’가 조만간 설치된다. 총무원장 스님은 “건강하면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분들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대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만들겠다”며 “갈등사안에 대한 합리적 조정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역설했다. 교구본사 주지 및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을 비롯해 불자다운 불자라면 누구와도 만나 귀를 열겠다고 했다. “소외받는 종도가 아무도 없도록 하겠다”는 출마기자회견의 울림이 애당초 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협치(協治)의 실천은 ‘분권(分權)’이다. 총무원장 스님은 “중앙종무기관에서 설립한 각급 기관과 법인의 대표를 총무원장이 맡고 있다”며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총무원장은 종헌종법에 따라 조계종 유지재단 이사장, 승가학원 이사장, 불교신문사 사장, 사회복지재단 이사장, 공익기부법인 아름다운동행 이사장,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이사장 등을 겸직한다. 

손에 잡히는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예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오심스님은 “종단이 변화하려면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게 총무원장 스님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미래불교를 실현하기 위한 각종 제도 혁신이 앞으로 종단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책임’이란 키워드는 공동1위다. 취임사에는 ‘공동체’가 ‘책임’과 똑같은 횟수로 사용됐다. 알고 보면, 궁극적으로 불교라는 공동체를 위한 책임이고 소통이고 화합이다. 향후 계획으로 소개된 △승려복지를 위한 승가공동체기금 조성 △전국비구니회의 종법기구화 △중앙신도회와 연대한 신도조직화는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겨누고 있다. 대사회적 역할 강화는 더 큰 공동체를 향한 서원인 셈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자연공원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비판으로 마무리한 점도 ‘불교전통문화 수호’라는 맥락에서 자못 강렬한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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