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박남준 시인 고향 법성포
간다라 양식 불교박물관 조성 한창
노을이 펼쳐진 해안도로 따라 돌면
절경과 환희심에 불교 더 빠져들어

전남 영광 법성포는 내 젊은 날의 지인이자 유명한 시인 박남준의 고향이다. 그는 언제나 슬픔에 젖어 삶과 사물을 이윽히, 남다르게 내다보는 감성과 통찰을 지닌 시인이다. 지금은 전남 구례 악양들로 터를 옮겨 사는 그를 이 근래 한동안 보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인연의 그물이 더 넓게 쳐진 탓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때와 절기 또는 시절에 따라 맺어진다고 하는 바, 이를 일컬어 우리는 시절인연이라 명명한다. 그 시절인연은 ‘그때 그 시절’ 사물과 풍경을 우리들 내면에 행복하게 또는 무심히 금 긋고 지나간다. 해서, 전남 영광 법성포 얘기만 나오면 나는 박남준 시인을 떠올린다. 10년 전 일만 해도 그렇다. 내가 하는 영화 일이란 게 때로 극심한 고통과 절망에서 헤매기도 한다. 어느 해 늦가을 나는 절망에서 몸부림 치다 남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말이 여행이지 고통의 축제이자 순례와 다름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남녘을 돌다가 문득 구례를 지나치면서 박남준 시인을 찾아가 하룻밤 머물렀다. 그와는 이미 푸른 청춘을 몇 해 같이 뒹굴며 지낸 적이 있는데다가, 시대적 고뇌를 더불어 나눈 처지라 형제 같은 감정이 더 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는 하룻밤 따뜻이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한 달치 생활비를 노잣돈으로 보탰다. 새벽녘에 남도 순례를 위해 다시 나서는 나 몰래 가방 속에 넣어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법성포는 그런 박남준을 떠올리는 내 생각의 근원에 아름답게 머물러 있다. 법성포구의 아름다운 바닷물 소리와 저 멀리 칠산바다의 빛나는 노을로 채색된 채. 요즘처럼 깊어가는 계절에 내 발길은 법성포를 향한다. 그곳은 주지하다시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다.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인 그해 중국 동진에서 마라난타 존자가 불경을 가지고 법성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지역 이름도 법 법(法)자에 성스러울 성(聖) 아닌가. 이번에 다시 가서 새롭게 안 사실이지만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였다. 아미타불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불연이 깊은 전남 영광 법성포는 한국의 불교문화사적, 정신문명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시인 박남준의 고향. 법성포. 그는 지금 ‘토지’의 고장 악양에 머물러 있을 테지만 법성포를 돌아보는 내내 함께 옆에 동행하는 느낌이다. 

“그 옛날 백제시대에 불교가 이곳으로 처음 들어왔대.” 젊은 날의 박남준이 멀리 칠산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한 말이다. 청춘시절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이름이 ‘삼산(三山)’으로 불렸다는 이야기와 시를 쓰기 위해 이곳 법성포구에 자주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인의 감성과 통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그는 다시 입증했다. 

지금 법성포는 찬란하고 웅혼했던 시절의 백제불교 문화의 서막을 열기 위해 간다라 양식의 야외박물관을 조성중이다. 이미 간다라광장과 108계단, 만불전과 부용루를 비롯해 간다라유물관, 탑원, 높이 23.7미터의 사면대불상등이 영광 법성포 포구 불교 최초 도래지에 자리잡았다. 노을과 함께 굽이굽이 펼쳐진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돌다보면 전남 영광의 법성포가 왜 법성포인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더불어 불교가 전래되면서 맨 처음 지은 도량 불갑사의 대웅전과 삼신불좌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불교의 뜻과 의미가 더욱 가슴 속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불교신문3430호/2018년11월14일자]

백학기 논설위원·시인·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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