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중의 진리는 ‘사성제’이며, 도(道) 중의 도는 ‘팔정도’이다. 나의 고통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이 온전히 소멸하려면, ‘내’가 사라져야 한다. 내가 사라지려면 ‘팔정도’를 닦아야 한다.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관찰, 바른 선정, 바른 견해가 그것이다.

팔정도의 공통점인 ‘바름’의 핵심은 바로 ‘내비도’에 있다. 자신의 몫에 충실할 뿐! 내 몫이 아닌 것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즉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으면서, 지나친 관심이나 애착은 피하는 것이 바른 것이다. 이렇게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비결은 ‘바라봄’에 있다. 매사를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되, 분신(分身)이자 화신(化身)인 아바타로 보는 것이다.

결국 몸도 아바타, 마음도 아바타, 나도 아바타, 너도 아바타, 우린 모두 ‘아바타’라고 보는 것이다. 이 몸은 화신(化身)이요, 이 마음은 보신(報身)이다. ‘진짜 나’는 성품인 법신(法身)인 것이다. 다시 말해 화신이나 보신은 법신의 ‘아바타’일 뿐이다. 이것은 내 몸과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눈앞에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아바타의 세상이요, 가상현실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늙어가도 괜찮다, 아바타니까! 병들어도 괜찮다, 아바타니까! 죽어가도 괜찮다, 아바타니까! 탐이 나도 별 거 아니다, 아바타니까! 화가 나도 별 거 아니다, 아바타니까! 불안해도 별 거 아니다, 아바타니까! 실패해도 괜찮다, 아바타니까! 성공해도 별 거 아니다, 아바타니까!

안심, 안심 또 안심이다. 아바타는 수없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또 받을 수 있으니까. 다만 내공점수가 문제인 거다. 이 아바타로 복 닦기, 도 닦기를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내공점수가 달라진다. 내공점수가 높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아바타를 생성할 수 있다. 내공점수가 낮으면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진 아바타를 생성할 수 밖에 없다.

몸과 마음은 아바타며, 관찰자가 ‘진짜 나’다. ‘진짜 나’는 즐겁다. ‘진짜 나’는 행복하다. 여기에서 아바타가 생성된다. ‘진짜 나’는 항상 크고 밝고 충만하기 때문에. 우린 모두 ‘아바타’다!

[불교신문3430호/2018년11월14일자]

월호스님 논설위원·행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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