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보다 
은근한 멋이 나는 
파스텔 빛 단풍이 
점점 좋아진다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발그레 노르스름한 잎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 부분이다. 이 시를 처음 대하고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시구에 얼마나 놀랐던지. 마치 나무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만큼 가을을 아름답게 노래한 시도 드물 것이다. 시는 이런 기발하고도 참신한 표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가을 나들이를 했다. 초록이 지친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한 시간여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산정호수로 갔다. 그곳에는 호수 둘레를 따라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있다. 물과 나무와 산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며 가을을 만끽했다. 호수 주변이 온통 울긋불긋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황홀하게 물든 단풍이 늦가을 정취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하늘로 뻗은 활엽수는 가지에 품고 있던 나뭇잎들을 바람의 손에 들려 천천히 내려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가랑잎 하나가 슬쩍 머리에 와 앉는 게 아닌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나에게 온 낙엽이 너무 반가워 얼른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색은 변했지만 모양은 푸르던 날 그대로였다. 나는 낙엽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책갈피에 꽂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다 생각을 바꿔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얹어놓고 왔다. 낙엽도 혼자는 쓸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낙엽이 더미를 이룬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넉넉함에 마음이 따뜻해져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 한다. 며칠 전 연천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홀로 지내는 분을 만났다. 그분 마당에는 은행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면 근 한 달을 쓸어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둠이 찾아오면 은행잎이 마당을 환하게 밝혀주기 때문이란다. 

퇴근길에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었다. 땅거미가 지는 거리를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 모두 그 노랑에 눈을 떼지 못했다. 떨어진 나뭇잎을 며칠이라도 더 보고 싶은데 도심 거리에 떨어진 은행잎은 단풍 낙엽 거리로 지정된 곳이 아니면 하루도 그곳에 머물지 못한다. 다음날 보면 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끗하다. 혹자는 은행잎을 모아 남이섬으로 보낸다는 말도 하지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깊은 가을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단풍은 색깔이 가지가지다. 새빨갛게 불타는 듯한 잎, 나무를 샛노랗게 뒤덮은 잎, 한 나무에서도 초록 노르스름 노랑 불그스름 빨강으로 그러데이션 된 잎 등 각양각색으로 가을을 꽃피우고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단풍 색깔이 있을 것이다. 나는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보다 은근한 멋이 나는 파스텔 빛 단풍이 점점 좋아진다.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발그레 노르스름한 잎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좀 어설프고 헐렁하게 물든 잎에 더 마음이 가는 건 강렬한 단풍보다 시선은 덜 받겠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워서다. 물론 이 나뭇잎도 날씨가 도와준다면 더 진하게 물들겠지. 하지만 단풍이 절정일 무렵이면 꼭 비바람이 불어 하룻밤 사이에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만다. 그럴지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조금 서툴고 부족해도 기죽거나 불평하거나 포기하는 나무가 하나도 없을 터이니.

[불교신문3430호/2018년11월14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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