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불교음악원장 박범훈, ‘불교음악여행서’ 출간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이 올가을 자신의 음악인생과 불교음악사를 총망라한 책 <박범훈의 불교음악여행>을 발간했다. 염불하는 스님들과 불교합창단원들, 그리고 불교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친근한 안내서다. 지난 5일 가을내음 물씬 나는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만났다.

불교음악 원류부터 현재까지

부처님 탄생 출가 성도 열반…

음악으로 여행하는 불교이야기

광덕스님 비롯 도문·보광스님 등

1990년대 불교음악 인연 ‘눈길’

1991년 봄, 불광사 광덕스님(1927~1999)은 88서울올림픽 개막식 오프닝곡을 작곡하고 교성곡 ‘붓다’로 이름을 날린 40대 초반 젊은 음악감독 박범훈을 찾았다. 스님은 다소 불편한 몸짓으로 손수 쓴 4.4조 가사집 ‘보현행원송’을 내밀었다. “이 시에 곡을 붙여 많은 대중들이 불러서 보현행원으로 보리를 이루게 해주세요.” 글자수가 딱딱 맞아 어렵지 않게 곡을 붙일 수 있다며 스님 앞에선 장담했지만 사정은 달랐다. 급기야 가사집을 싸들고 지리산 불락사로 들어가 겨울 내내 절에 있는 움막집에서 혹독한 웃풍을 견디며 곡을 써내려갔다. 눈만 뜨면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를 염불하듯 외며 화두처럼 매달렸다. 연필을 잡은 손가락이 부어올라와 반창고를 붙이고 곡을 썼다. 원체 시가 길고 관현악 반주까지 120분이 넘는 분량의 악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박범훈의 불교음악여행

박범훈 지음 / 불교신문사

1992년 4월2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작사 광덕스님, 작곡과 지휘 박범훈, 노래 송창식 김성녀, 그리고 중앙국악관현악단과 불광사합창단. 연습이 아니라 화두로 정진하듯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단원들에게는 악보도 필요치 않았다. 아예 모두 외워서 가슴으로 연주하고 마음으로 불렀다. 무대에 오른 합창단원만 500여명, 객석은 이미 만석. 마지막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를 외칠 때는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됐다. “두 시간 동안 세종문화회관은 보현행원송으로 터져 나갔습니다. 지휘봉을 멈췄을 때 들려왔던 환호의 소리…. 3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라는 함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지휘대에서 내려온 박범훈은 객석에서 부축을 받고 있는 광덕스님을 무대 위로 모셨다. 당시 부축을 받지 않으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던 스님은 홀로 가뿐하게 무대에 오르셨다. 객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음악회보다 더 진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스님은 마이크를 들고 지휘자 박범훈의 손을 이끌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현행자입니다.”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은 광덕스님을 인연으로 ‘보현행원송’을 통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고향땅에 있는 양평중학교 시절부터 트럼펫 연주를 했던 박 원장은 국악예술고등학교(現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국악을 공부했다. 중앙대에서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하고 일본 무사시너음대에서 석박사를 거쳐 중앙대 교수를 지냈다. 급기야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으면서 서양음악과 국악, 민요, 불교음악, 불교사상까지 섭렵한 그다.

<박범훈의 불교음악여행>은 불교음악의 원류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까지, 그가 수십년간 여행하듯 공부해온 불교음악의 자취를 여행가이드의 입장에서 기술한 책이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 동산에서 시작해 출가, 성도, 열반에 이르는 멀고 먼 길을 불전의 기록을 따라 안내하는 불교음악서다.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 ‘불교음악의 전래와 한국적 전개에 관한 연구’를 텍스트로 한 저서인 만큼 내용이 촘촘하고 출처와 근거가 명확하다.

1994년 12월 중앙불교합창단 창단연주회에서 지휘자 박범훈의 모습.

“불교음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보살을 찬탄 공양하는 소리입니다. 한마디로 ‘불교를 소리로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산사에서 들려오는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불교음악이고, 역사가 깊고 예술성이 높은 범패나 화청, 국악에서 연주하는 ‘영산회상곡’이나 ‘회심곡’, ‘비나리’, ‘탑돌이’, ‘산염불’ 등의 민요곡들도 모두 불교음악입니다. 그리고 각 사찰마다 합창단에서 부르는 찬불가 곡들이 모두 다 불교음악입니다.” 박범훈 원장은 “서양음악의 모체가 기독교라면 동양음악의 모체는 불교로 볼 수 있다”며 “산사에서 들려오는 염불가락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소리를 느낄 수 있듯이 불교음악은 곧 우리 민족의 삶의 소리”라고 단정지었다.

박 원장은 불교음악의 산 증인이자 하루도 빠짐없이 불교음악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스님들이 정작 불교음악을 어렵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2년 전부터 조계종 교육원과 불교음악원이 기획해서 전국 사찰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불교음악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학인 스님들 앞에서 봉은사국악합주단원들과 함께 연주를 겸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스님들이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불교음악이란 용어를 생소하게 생각해요. 스님들이 날마다 염불을 하면서도 염불이 불교음악인지 모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종교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말입니다.”

박범훈 원장은 올해 나이 일흔이 됐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불교를 향한 애정과 찬탄은 갈수록 깊고 진하다. 지난 6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한 교성곡 ‘니르바나 열반’은 유료객석 3000석이 일찍이 매진됐다. 불교음악의 대가, 박범훈이 여전히 현역임을 보여준 무대다. 박범훈의 죽마고우 도올 김용옥의 가사에 곡을 입힌 니르바나는 ‘완숙한 해탈의 경지에서 우러나온 박범훈 지고의 작품’이란 찬사를 받았다.

더 늦기 전에 그와 함께 불교음악여행을 떠나볼 일이다.

 

 

세종대왕은 왜 불교음악 고집했나

불당건립書 ‘사리영응기’에

세종의 佛心 상세하게 기록

“세종대왕이 불교음악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죠. 당시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고 있을 때였는데 국왕이 불당을 짓고 불가를 만들어 봉불행사를 직접 지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은 <불교음악여행>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한 불교음악’을 주제로 상세한 설명을 했다. “1449년 역대 선왕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세종대왕이 인왕산에 불당을 건립할 때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이 <사리영응기>입니다. 이 책에는 세종대왕이 봉불의식에 해당하는 일곱 개의 곡(가사는 9곡)을 창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를 반대하고 항의하는 조정대신과 성균관 유생들을 향한 세종대왕의 단호한 답변이다. “설사 1000여명의 의정(議政)이 반대한다고 해도 이미 나의 뜻은 결정되었다. 번거롭게 다시 청하지 말라.”

<사리영응기>에 따르면 당시에 45명의 악공이 관현악을 연주하고, 10명의 무용수와 10명의 창자가 동원되어 총체적 예술형태의 불교음악이 연출됐다. 박 원장은 “무엇보다도 숭유억불 정책 하에 군왕이 불당을 짓고 불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조선시대 불교는 사태(沙汰)된 것이 아니라 군왕을 비롯하여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세종대왕이 지은 9곡의 가사에 곡을 입혀 예불의식에서 부를만한 분위기의 곡으로 만들었는데 앞으로 불교음악원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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