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비와 지혜를 함께 갖춰야 하는가

자비심 있지만 상황 판단하는 
지혜가 부족하면 연민에 빠져 
중생 구원하려다 자기 자신도
중생범주 벗어나지 못하게 돼 

<화엄경>은 하늘의 신들과 보현을 위시로 한 보살들을 위한 가르침이다. 깨달은 자의 안목을 이해할 수준의 능력자들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일체 중생들을 인도하시려는 부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제32품인 ‘제보살주처품’은 보살들의 활동을 위한 자격요건과 활동상에 대한 가르침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며 고뇌하는 중생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로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보살들의 자격요건을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라 한다. 만약 자비심은 있지만 상황판단하는 지혜의 힘이 부족하면 연민으로 빠져 중생을 구원하려다 자신이 중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발생되니 항상 처염상정(處染常淨)하라고 하는 것이다, 중생구제를 원했지만 중생에게 끄달려 다니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니, 보살에겐 항상 지혜와 자비가 쌍으로 갖추어져야만 한다. 

중생을 제도할 때 범위가 광대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등장하는 능력이 여래행이다. 보살은 이 여래행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구제해야 하는 것이다. ‘제보살주처품’에 지혜와 자비를 갖춘 보살들이 중생구제의 서원을 세우고 어디서 누구랑 교화하고, 포교사업인 여래행을 앞장서서 실천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총 22곳에서 수없이 많은 보살들과 교화하는데, 동방 선인산 금강승보살과 300보살, 남방 승봉산 법혜보살과 500보살, 서방 금강염산 정진무외행보살과 300보살, 북방 향적산 향상보살과 3000보살, 동북방 청량산 문수보살과 2만보살, 동남방 지제산 천관보살과 1000보살, 서남방 광명산 현승보살과 3000보살, 서북방 향풍산 향광보살과 5000보살, 바다 한 가운데 금강산 법기보살과 1200보살, 큰 바다 가운데, 비사리남쪽, 마도라성, 구진나성, 청정피안성, 마란다국, 감보자국, 진단국, 소륵국, 가섭미라국, 증장환희성, 암부리마국, 건타라국 등에는 많은 보살들이 계셨다.

무한 공덕으로 힘을 비축한 보살들은 성불하기 직전까지 끝없이 많은 보살행을 하며 재재처처, 어디에서나 계시는 것이다. 지구상 어느 곳에만 불보살이 계시고, 어느 곳에는 안계신다 말한다면 보살이 머무는 곳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 되니 중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반드시 계신다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신라 자장율사는 636년 중국 오대산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발원을 지니고 태화지 문수보살 석상에서 기도할 때였다. 기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꿈에 문수보살이 게송을 주고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자장율사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본 노스님이 가사 한 벌과 부처님의 발우와 부처님의 두 골 한 쪽을 지니고 와서 자장율사에게 주며 그 뜻을 가뿐히 해석해 주었다. “‘가라파좌낭’이라는 말은 ‘일체의 불교 이치를 다 알아내었다’라는 말이요, ‘달례치거야’라는 말은 ‘자기의 본성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요, ‘낭가사가낭’이라는 말은 ‘불교 이치를 이렇게 해석한다’라는 말이요, ‘달례로사나’는 ‘노사나를 곧 본다’는 말이다.” 

그 스님은 자장율사가 신라로 돌아가 강원도 오대산에 1만 보살이 항상 계시니 그 곳에 모시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태화지의 용왕이 등장하여 재를 청하니 7일간 공양을 올렸다. 용은 그날 게송을 번역한 분이 바로 문수보살이니 어서 떠나라 한다. 자장은 신라에서 오대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을 뵙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원녕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니 “갈반처(葛蟠處)로 가라”고 한다. 

바로 지금의 정암사다. 그 무렵 보천, 효명 두 분의 왕자가 오대산으로 출가했다. 하루는 형제가 오봉(五峯)에 올라 예배를 하자, 동대인 만월산에 1만 관음이, 남대인 기린산에 여덟 분의 큰 보살을 수위로 한 1만 지장이, 서대인 장령산에는 무량수여래와 한 1만 대세지보살이, 북대인 상왕산에는 석가여래와 500의 대아라한이, 중대인 풍로산에는 비로자나를 중심으로 1만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이들은 5만이나 되는 진신 부처들께 하나하나 예배를 하며 부처님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 보살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말고 정진하시기 바란다. “동북방에 청량산(淸凉山)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으며, 지금은 문수사리보살이 그의 권속 1만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느니라.”

[불교신문3439호/2018년1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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