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이나 국경이나 민족의 차이보다는 우리 내면에 유유히 존재하는 공통된 그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통하고 있다는 연대감의 확인이다. 금선사에는 몇 분만 올라가면 북한산의 능선과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비밀스런 봉우리가 있다. 그곳에 같이 오르면 우리 모두는 말을 잊고 따스하게 데워진 돌 위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된다. 인종이 달라도 민족이 달라도 종이 달라도. 

다른 종은 바로 절에서 키우는 개들이다. 이 개들은 자연스레 따라올라 저들도 바위 하나를 차지하고 명상에 든다. 심지어는 50분이 넘게 앉아있을라치면 내 등으로 와서 앞발로 툭 쳐주어 죽비를 대신하기도 한다. 개가 내게 죽비로 알려주는 이 흐뭇한 상황에서 나는 불현듯 생명의 신비를 절감하고 명상의 절정을 호사한다. 

이런 큰 선물 외에도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의외의 소통을 선물처럼 한 아름 받는다. 며칠 전 사물을 면밀히 보려는 듯 동그란 안경을 쓰고 팔짱을 끼고 관찰하는 듯한 다소 꼬장꼬장한 느낌을 주는 캐나다 할머니가 산사를 찾았다. 산에 있는 절이라 올라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고 산사의 예절이나 규칙, 절하는 것 등 그녀에게 좀 까다롭게 느껴졌었을 것이리라 짐작했다. 

하룻밤을 지내고 오전 내내 아침 햇살아래 툇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참 고요하고 정다워 보여서 나도 책을 하나 들고 그녀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녀가 읽는 책을 궁금해 하며 다담시간 나누었던 이야기를 담은 얼마 전 출간된 책 <문득 하늘을 보다>를 권했다. 영문도 실어놓길 참 잘했구나 스스로 기특해하며. 그녀는 흔쾌히 책을 받아들였고 햇살이 가을 빛 낙엽에 반짝이는 빛을 조명삼아 책을 읽는 듯 평화로워 보였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환해진 얼굴로 읽고 나서 자신이 가졌던 많은 분별심과 기준들에서 문득 풀려남을 느꼈다고 한다. 그제 서야 이 아름다운 가을 산사의 정취와 고요함이 스며들듯이 가슴속에 물들고 있음이 느껴지더라고. 그리고 책을 몇 권 더 사가겠다고. 

우리는 이렇게 소통되는 생명들이다. 오늘 또 한 번 생명에 감탄하며 이 정체 없는 연대감에 뱃속이 든든함을 향유한다. 

[불교신문3439호/2018년11월10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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