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초개사 마당에 서 보면 문득 그의 육성을 들을수도"

경주 분황사는 원효스님이 가장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돼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 모습. 사진=박사 북 칼럼니스트.

원효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스님의 이름이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해골물’이야기는 잘 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며, 마음이 퍽퍽할 때는 ‘일체유심조’를 되뇌이기도 한다.

그보다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은 월정교에서 굴러 떨어져 옷을 적신 후 요석궁으로 안내되었던 일화를 떠올릴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스만큼 인상적인 것은 많지 않으니까. 물론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설총’이라는 건 잘 모르지만.

조금 더 잘 알게 되면, 우리 주변에 원효의 흔적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서울이나 경주, 경산에 사는 사람 중에 원효로를 안 지나가 본 사람은 드물다. 남에도 북에도 원효가 세웠다는 절이 수두룩하다.

온갖 전란을 다 겪은 한반도에 13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의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기는 쉽지 않다. 원효가 그토록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묻히고 잊힐 일이었다. 다행이다. 그의 매력을 연극으로, 문학으로, 뮤지컬로, 영화로 다시 되살리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거듭 다행이다.

그러나 원효의 이름이 불리는 횟수에 비해, 원효의 철학은 거의 안 알려져 있다. 그가 “화쟁국사”라는 시호를 얻을 만큼 중요하게 다루었던 ‘화쟁’은 그저 ‘타협’정도로만 이해될 뿐이다. 그가 젊은 시절에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나, 나이 들어 파계하고 ‘소성거사’가 되었던 이유를 촘촘히 묻지 않는다. 해골물 에피소드는 그의 철학을 쉽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걸 돕긴 하지만, 그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교훈에서 단 한 걸음도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원효스님이 불교에 출가할 뜻을 굳게 세우고 자신의 집을 헐어 처음 연 절이란 뜻의 경산 초개사 모습. 초개사 앞마당에서 경산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진=화쟁위원회.

고승의 철학을 계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원효의 불교사상은 크게 일심사상, 화쟁사상, 무애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그의 사상을 다룬 책과 그의 저서들을 찾아 읽는 것은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그런 방법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한없이 자유로웠던 영혼, 불교의 핵심을 설파하기 위해 책과 붓을 버리고 저잣거리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던 원효의 입장에서는 코웃음 칠 일일 수도 있겠다.

가장 좋은 것은 원효의 육성을 듣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가까이 가볼 수는 있다. 그의 삶과 이야기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을 찾아가보는 것이다.

태어난 곳, 공부했던 곳, 살았던 곳, 입적했던 곳을 둘러보면 책의 갈피만 들여다보아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일 것이다. 경주와 경산을 중심으로 원효의 흔적을 찾는 순례를 계획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그저 둘러본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원효에 대해 생생하게 알려줄 수 있는 가이드가 함께 한다.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순례에는 다큐멘터리 ‘원효를 만나다’를 감독한 김선아 감독이 동행하며, 그가 찾아낸 자료를 펼쳐 원석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원효와 관계된 장소를 집요하게 찾아다니고 관계자들을 만나 귀 기울여 들었던 이야기다. 그가 자신의 삶과 붙여보고 견주어보고 살아본 이야기다.

원효의 흔적을 모두 찾으려면 전국을 떠돌아야 할 일이나, 그의 탄생부터 입적까지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경주와 경산으로 지역을 좁혔다. 제석사, 초개사, 분황사, 골굴사, 기림사, 월정교, 요석궁, 그리고 원효의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들을 둘러본다.

원효라는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한 인덱스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육성을 듣는 것도 기대해 볼 법 하다. 초개사 마당에 서 보면 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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