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에 속박되어 도(道)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널리 펴고 알아듣게 타이르며, 말로는 물거품, 파초, 아지랑이, 그림자, 메아리, 요술, 허깨비, 꿈, 물속의 달 등의 비유로 그 뜻을 풀이한 것이니, 이런 것들이야말로 모두 허무한 것이며 미혹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 <도세품경> 중에서

속가 사촌 동생의 투병 소식을 접한 날이었다. 맑게 씻긴 아침 해가 뜨는 시간이었다. 유난히 귀여워했던 동생이었고 유난히 나를 따랐던 아이였지만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벌써 반백의 세월을 살았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문을 열어놓고 나앉았다. 야트막한 산 아래 쫄쫄거리는 웅덩이에서 무당이 왔다. 아니, 비단이 문 앞에 앉았다 갔다.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생명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았다. 저승사자와 망자, 애간장과 해탈. 남의 말 같은 것들은 못 보낸다고 몸부림이라도 쳐볼 걸 그랬다는 후회 향한 통로가 되었다. 잔상이 되었다.

무당이 문 앞에 어슬렁거렸다. 아니, 비단이 붉은 배를 애써 감추었다. 다가갈 엄두는 남겨뒀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마음을 허락한 죄로 사람이 내 안에 왔다 가는 것이었다. 울다가 웃다가. 무당 같다가 비단 같다가.

[불교신문3438호/2018년11월7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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