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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불국토] <20> 괘불도야단법석 나투신 부처님…민중은 간절한 기원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8.11.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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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해남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서 괘불재가 열렸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12미터나 되는 대형의 괘불도를 걸어놓고 이루어지는 괘불재는 일반인들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게도 사찰 비장(秘藏)의 괘불도를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괘불도는 무엇이며, 어떠한 목적에서 만들어졌을까.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야외법회 사용 대형 불화
전국 사찰에 120여점 소장
대부분 조선 후기에 ‘조성’

법회(法會)나 도량(道場)에 사용되는 대규모의 불화를 보통 괘불도라고 부른다. 야외나 마당에 걸어두고[掛] 의식을 행한다 하여 괘불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괘불도의 크기는 보통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보통 때는 나무 상자[괘불함] 안에 넣어 대웅전이나 극락전 같은 전각의 뒤쪽 공간에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영산재(靈山齋)라든가 수륙재(水陸齋), 예수재(預修齋), 기우제(祈雨祭) 또는 사월초파일 행사같이 대중이 많이 모이는 대규모 야외법회가 열릴 때면 괘불도를 밖으로 모셔와 대웅전 앞에 있는 괘불대에 걸어놓고 의식을 행하곤 한다. 

<범음집(梵音集)>, <석문의범(釋門儀範)> 등 불교의식집에는 불가(佛家)에서 의식을 행할 때 각 재마다 행하는 작법(作法) 절차를 기록하고 있는데, 괘불도를 옮기는 괘불이운(掛佛移運)은 재의 단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계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근래 신도들 사이에서는 괘불함에 손이 닿기만 하여도 무병장수한다는 속신(俗信)으로 인해 괘불도를 이운할 때면 많은 신도들이 서로 괘불도를 모시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괘불도는 언제부터 조성되었을까. 현재 전국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괘불도는 약 120여 점으로 대부분 조선시대 후반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언제부터 괘불도가 조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 불교의식과 법회, 재, 도량 등이 빈번하게 열린 것을 볼 때 고려시대에 이미 괘불도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기도 하고, 기우제를 지내면서 용을 그려놓고 재를 올린 기록에 의하여 고려 말~조선 초기에 괘불도가 시원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괘불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22년에 조성된 나주 죽림사괘불도이고, 괘불도에 대한 기록 또한 17세기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괘불도는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듯 하다. 17세기는 소위 ‘소빙기(小氷期)’라고 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현상이 다수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재(旱災)와 기근, 전염병 등이 속출하였던 시기였다. 따라서 전국의 사찰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과 역병, 기근 등으로 죽은 영혼들을 천도하는 법회가 다양하게 열리게 되었을 것이며, 바로 이러한 대형법회에 필요한 불화로 조성된 것이 괘불도였을 것이다. 

괘불도는 그려진 존상이 누군가에 따라 영산회상괘불도를 비롯하여 아미타불괘불도, 미륵불괘불도, 노사나불괘불도, 지장보살괘불도 등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석가모니불을 그린 영산회상괘불도이다. 괘불도를 건 후에는 그 앞에 불단을 마련하여 향차꽃과일등쌀 등 육공양물(六供養物)을 비롯하여 많은 제물들을 차려놓고 의식을 행하게 되므로, 괘불도는 곧 의식이나 법회의 주불(主佛)이 된다. 

1653년에 조성된 구례 화엄사 괘불도.

따라서 원래 법회나 제(祭), 재(齎)의 성격과 의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괘불을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영취산에서 진리를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린 영산회상괘불도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하면 영산재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을 그린 영산회상괘불도를, 극락왕생과 정토를 기원하는 법회에서는 아미타불괘불, 그리고 죽은 뒤에 행할 불사를 미리 닦는 예수재(預修齋)와 물이나 육지에 있는 고혼과 아귀에게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수륙재(水陸齋) 때에는 지장보살괘불도 등을 거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래 대부분 의식이나 법회 때 영산회상도를 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괘불 또한 영산회상괘불도가 가장 많다.

영산회상괘불도에도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그린 독존도 형식를 비롯하여 석가모니문수보살보현보살 등 삼존을 중심으로 그린 삼존도 형식, 석가모니와 아미타불약사불을 그린 삼불회 형식, 석가모니삼존과 아미타불다보불관음보살세지보살을 그린 칠존도 형식, 석가모니삼존과 10대제자, 보살을 비롯한 많은 권속들을 그린 군도(群圖) 형식 등이 있으며, 매우 특이한 도상으로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있는 염화불(拈花佛)형식도 있다. 

단독의 석가모니불을 그린 예로는 천은사괘불도(1673)을 위시하여 은해사괘불도(1750)선암사괘불도(1753)가 대표적이며, 삼불회 형식은 용흥사괘불도(1684)금탑사괘불도(1778)가 전한다. 또 칠존도 형식은 내소사괘불도(1700)를 시작으로 청곡사괘불도(1722)안국사괘불도(1728)운흥사괘불도(1730)개암사괘불도(1749) 등, 군도 형식으로는 보살사괘불도(1649)영수사괘불도(1653)북장사괘불도(1688)영은사괘불도(1856) 등이 남아있다. 

그중 영수사괘불도는 중앙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법화경> 서품(序品)에 등장하는 많은 권속들과 석가모니에게 법을 묻는 사리불존자를 하단 중앙에 표현한 것으로, 대웅전이나 영산전에 봉안하는 영산회상도와 동일한 형식을 보여준다. 또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 있는 염화불(拈花佛)형식이란 영산회상의 석가모니가 연꽃을 대중에게 들어보였을 때 가섭존자만이 그 의미를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재 괘불 중 20여 점이 넘을 정도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중에는 용문사괘불도(1705)남장사괘불도(1788)봉은사괘불도(1886)처럼 여래형의 석가가 꽃을 든 형식이 있는가 하면 마곡사괘불도(1687)청량사괘불도(1725)통도사괘불도(1767)처럼 보관을 쓰고 보살의(菩薩衣)를 입고 영락으로 장엄한 석가모니가 꽃을 든 형식이 있다. 이렇게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은 선종에서 교법을 전하는 염화시중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조선후기에 법화신앙(法華信仰)과 선종(禪宗)이 결합된 복합적 불교신앙을 보여준다.

1650년에 조성된 공주 갑사 괘불도.

영산회상 괘불도 이외에 법신(法身) 비로자나불과 보신(報身) 노사나불,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을 함께 그린 삼신불괘불도도 그려졌다. 갑사괘불도(1650)봉선사괘불도(1735)흥천사괘불도(1832)청계사괘불도(1862) 등이 이 형식에 속한다. 이중에는 갑사괘불도처럼 삼신불을 중심으로 화엄설법도량에 모여든 불, 보살과 권속들을 화면 가득 묘사한 것도 있고, 흥천사괘불도처럼 삼신불을 중심으로 가섭아난문수보살보현보살만을 표현한 간단한 형식도 있다.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석가모니를 협시한 흥천사괘불도같은 형식은 특히 19세기후반~20세기 전반에 걸쳐 서울, 경기 일원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또 권속은 모두 생략되고 삼신불만을 표현한 형식으로는 수타사괘불도(조선후기)청계사괘불도수국사괘불도(1908년)를 들 수 있다. 또한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삼불회와 삼신불회가 하나의 화면에 결합된 괘불도 조성되었는데, 칠장사괘불도(1628)부석사괘불도(1684)부석사괘불도(1745) 등 몇 점이 남아있다. 

이 형식에 속하는 괘불도는 하나의 화면에 횡이나 종으로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등 삼신과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 등 삼불을 교차하여 배치한 것으로 아마도 조선후기에 이르러 불교신앙이 통폐합되고 불교신앙이 다양화되면서 나타난 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밖에 미륵불을 주존으로 한 미륵불괘불도 1627년 무량사괘불도, 1673년 장곡사괘불도과 노사나불괘불도, 아미타불괘불도, 지장보살괘불 등도 남아있어 괘불도에 표현되는 존상은 석가모니불 외에도 다양하였음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야외법회에서 의식의 주불(主佛)로 봉안되었던 괘불도는 가장 대표적인 의식용 불화 중의 하나이다. 특히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괘불도가 억불숭유시대로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에 다수 조성되었던 사실은 유교 중심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천도하고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인 불교가 여전히 민중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을이 깊어진 요즈음, 청명한 하늘에 높이 걸린 괘불도를 보러 산사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불교신문3438호/2018년11월7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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