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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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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문 그 곳] <50> 부석사 가는 길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아름다운 가을을 담는다

 

계절이 너무 빨리 변한다. 
무더위에 지쳐갈 무렵 
시원한 바람이 부는구나 싶더니 
어느새 나뭇잎이 다 떨어져 간다. 
가을에 끝자락에 와있다. 
봄처럼 설레거나 급하지 않게 
차분히 같이 있고 싶은 가을인데 
이제 곧 이별이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향하는 은행나무 길은 화려하긴 하지만 가을 특유의 적적함도 느껴진다. 한 어르신이 은행나무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지난 6월 바레인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라 왔다. 영축산 통도사, 봉황산 부석사, 속리산 법주사, 두륜산 대흥사, 태화산 마곡사, 천등산 봉정사, 조계산 선암사 등 7곳의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은 유투브로 생중계되었다. 안건이 상정되고 심사위원들이 보는 화면에 부석사 사진이 나왔다. 단풍으로 물든 부석사는 한국의 산지승원을 대표하는 듯 했다. 지난 10월24일 청량리역에서 아침 일찍 무궁화호를 타고 부석사를 향했다. 고속철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흔들거림을 즐기다 보니 잠이 솔솔 온다. 문득 눈을 뜨니 창밖에 안개가 가득 끼여 있다. 충주댐 건설로 거대한 호수가 생긴 단양을 지나고 있었다. 꿈속 같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소백산을 지나 풍기로 나오니 안개는 모두 사라지고 따가운 햇살이 비춘다. 희방사역에 정차한다. 등산배낭을 맨 한명만 조용히 역으로 빠져나간다. 홀로 산행을 떠나는 사람이 부럽게 느껴진다. 

영주역에 내려 부석사로 향하는 길, 가로수가 온통 은행나무이다. 영주시의 시목(市木) 또한 은행나무라고 한다. 왼쪽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있는 반면 오른쪽은 아직 푸른 나무들이 있다. ‘햇살이 비추는 것 때문일까?’ 고민하다 보니 ‘아!’ 옆에 있는 사과밭이 눈에 들어온다. ‘사과 밭에 주는 비료 때문에 추위에도 강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 가로수길 드라이브를 마치고 도보로 부석사로 향한다. 

천왕문을 나서면 펼쳐진다. 화엄세계.

매표소를 지나니 일주문이 보이고 환상적인 은행나무길이 펼쳐진다. 인터넷에서 ‘부석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게 ‘부석사 은행나무길’이다. 평상시 같으면 ‘무량수전’이 떴겠지만 가을에는 사람들이 ‘은행나무길’을 더 많이 찾나 보다. 일주문으로 향한다. 길 또한 배우들이 지나가는 레드카펫처럼 옐로우카펫이 부석사를 찾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카펫을 밝으며 천천히 천왕문으로 향한다. 

부석사는 대표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산 구릉에 사찰이 건립되었는데도 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산과 잘 어울려 사찰이 서 있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천왕문을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형형색색의 단풍나무들이 즐비한 가운데 양 쪽에 삼층석탑이 양팔을 벌려 참배객을 맞이하고 바로 앞에 범종각이 기와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짓고 있다. 범종각으로 향하는 계단길은 별다른 안내 없이도 바로 나아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범종각 아래 계단을 오르면 부석사가 왜 산 지형을 거스르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무리해서 수직적인 구도를 만들지 않고 축이 꺾이며 안양루가 위치하고 있다. 뒤로 살짝 무량수전이 보인다. 

안양루 아래 계단을 오르니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 보인다. 참배하기에 앞서 안양루 옆에 서서 풍광을 즐기며 잠시 숨을 고른다. 

무량수전. 최순우 선생처럼 느낄 수 있다. 비례의 상쾌함.

부석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 바로 의상스님이다.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 부석사를 창건한 스님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의상전교조’에 따르면 의상 스님이 의봉 원년(676)에 태백산으로 돌아가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고 대승을 널리 펴니 신령스러운 감응이 많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이것 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선묘낭자와의 이야기는 ‘송고승전’에 나온다. 의상스님이 본국에 되돌아온 후 산천을 두루 다니다가 태백산에 이르러 땅이 신령스럽고 산이 수려하여 법륜을 굴릴만하다고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는 이미 권종이부의 무리들이 오백명이나 모여 살고 있었다. 의상스님이 ‘대화엄의 가르침은 복되고 선한 땅이 아니면 일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용으로 변해 항상 의상스님을 따라다녔던 선묘룡이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곧 허공 중에 커다란 바위로 변해서 가람 위를 덮고는 떨어질 듯 말 듯 하였다. 그 상황에 놀란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의상스님이 이 절에 들어가 겨울에는 양지 바른 곳에서 여름에는 그늘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였는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모여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의 그 바위가 무량수전 왼쪽 뒤편에 놓여져 있다. 

무량수전 기둥에 기대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서서>’가 워낙 유명한 탓이리라.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고 한국전통문화의 정수를 널리 알린 미술사학자이다. 요즘은 부석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 인기척이 끊기는 것을 잘 느끼긴 어렵겠지만 조금 더 차분히 최순우 선생 느낌을 따라가 보자. 

석등사이로 보이는 무량수전 현판.

무량수전을 참배하고 보통은 발길을 돌리는데 우측에 있는 석탑을 끼고 길을 따라 얼마 오르지 않으면 또 다른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인 국보 제19호 조사당에 닿는다. 조사당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쓰던 지팡이가 나무로 살아남아 있다. ‘선비화’라 불리는 이 나무는 봄이면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한다. 봄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조사당 또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 무량수전으로 내려오며 화엄초조라 불리는 의상스님의 화엄사상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법계도>한 구절을 떠올린다. ‘하나 중에 일체 있고 일체 중에 하나 있으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이 봉황산, 부석사, 무량수전 이 곳에 머무는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 가을 속에 담는다. 

의상스님 지팡이를 꽂은 자리에 자라난 선비화. 봄이면 노란 꽃이 핀다.

[불교신문3438호/2018년11월7일자] 

영주=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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