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 하나가 있다. 다섯 살 정도 된 내가 어느 흙집 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엄마는 그 날 누군가의 병문안을 갔다. 작고 허름한 방에 어린 나까지 데리고 들어가기 어려웠던지 엄마는 말했다. “금방 나올게. 여기서 잠깐만 놀고 있어.” 금방 나오겠다던 엄마는 한참이 지나도 안 나오고 방에서는 더딘 말소리만 새어 나왔다. 해는 뜨거웠고, 흙집은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나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언제 나올까. 금방 나온다고 해 놓고 뒷문으로 나간 건 아닐까? 엄마 빨리 나와.’ 엄마는 영영 나오지 않고, 해는 영영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실상 엄마는 금방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잠깐’에서 시간의 공포를 느꼈다.

십대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공부하는 게 싫었고 자꾸 솟아나는 존재에 대한 의문에 지쳐갔다.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중얼거렸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어른이 될 거라고, 그럼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다. 어쩐지 어른이 되는 나이는 서른 같아 보였다. 서른, 그 나이가 되면 세상이 환히 보일 거라고 기대했다. 모르는 게 하나도 없고, 돈도 많고, 함부로 울지도 않는 진짜 어른 말이다.

마침내 서른. 어른이 된 건 고사하고 나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병상의 몸뚱이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거라 여긴 것들은 여전히 의문인 채 속에서 곪아 썩어갔다. 곧 마흔을 기다렸다. 마흔이 되면 불혹이라니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겠지. 그리고 마흔이 되었다.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모르겠고,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외로웠다. 순간 이런 식으로 오십이 되겠구나 싶었다. 아, 이런 거구나. 삶이 이런 거라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어도 사람은 언제나 외롭고 불안한 존재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다면 어때야 했을까. 나는 오지도 않은 저 너머의 시간만 기다리지 말고 그 나이들 속의 나를 사랑했어야 하고, 순간을 즐겼어야 하고, 원래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일찍 눈치 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다섯 살, 그날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불안으로 떨기만 했다. 엄마 말을 들을 걸, 그 시간을 혼자 춤추고 뛰며 잘 놀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구나. 어차피 죽음은 정해져 있고 ‘잠깐’의 이승에서 순간마다 원 없이 춤추고 뛰어 놀아야겠구나. 그저 지금이 좋을 뿐, 절대 저 너머를 탐하지 말자고 또 한번 다짐한다.

[불교신문3438호/2018년11월7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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