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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39> 아승지품과 여래수량품
  • 원욱스님 서울 반야사 주지
  • 승인 2018.11.0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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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생이기에 장애가 많아
깨닫는 데 두 가지 어리석음 밝혀
여래의 무한공덕ㆍ수명 알게 해

<화엄경> 39품 중에서 오직 부처님이 설하신 것은 ‘아승지품(阿僧祇品)’과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뿐이다. 그 외의 품들은 모두 보살이 설했으니 바로 십신 문수사리보살, 십주 법혜보살, 십행 공덕림보살, 십회향 금강당보살, 십지 금강장보살이다. 

왜 부처님이 직접 설하셨겠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깨달은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생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되는 데 장애가 많다. 가장 큰 ‘두 개의 장애인 어리석음(佛果二愚)’을 밝혀주기 위해 부처님이 직접 나선 것이다. 바로 광대산수우(廣大算數愚)와 수호광명공덕우(隨好光明功德愚)다. 중생의 안목으로는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을 숫자의 개념으로는 셀 수 없는 광대함을 이해할 수 없고, ‘부처님의 수명’도 시공을 초월해 다함없이 존재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라 한다. 이 장애를 벗어날 때 비로소 일체지(一切智)라 부른다.

제30품인 ‘아승지품’에서 심왕보살이 부처님께 십대수의 의미를 여쭌다. “부처님의 수승한 덕을 왜 아승지, 무량, 무변, 무등, 불가수, 불가칭, 불가사, 불가량, 불가설, 불가설불가설이라 부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큰 수 의 단위를 드러내어 설명하게 된다. 숫자를 좋아하는 중생들을 위해서 비유를 들어 깨달음의 경지가 깊음을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아승지’란 무량해서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이것을 수(數)의 극치라 한다. 일, 십, 백. 천 으로 나가는 수의 백 번째 단위(곱하다)를 아승지라 하는데 굳이 아승지를 우리가 아는 숫자로 말하자면 ‘10의 7승’이다. 진리의 세계는 무한, 무수, 무량, 무변하여 생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깨친 자의 경지다. 이 세계에서 나타난 법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되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기 때문이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부처님의 설명을 듣고 심왕보살은 두 손을 모아 부처님의 경지를 찬탄하며 품을 마친다.

“일념 중에 불가설의 모든 세계를 설하고, 이루 다 말할 수없는 모든 겁 동안에 일념 일념 차례로 연설하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티끌 속에 불가설의 모든 중생이 있다. 그 중생들에게 광명을 발하는 것도 불가설이고, 하나하나의 광명 속에 모든 부처님을 출현시키는 것도 불가설이다. 한 오라기 털끝에 무량한 국토가 있지만 그 속에서 서로 부딪치지 않으며 미세한 털끝 또한 크지 않지만 넓은 불국토를 다 포함하는 것이 불가설 불가설전이다.”

제31품인 ‘여래수량품’은 부처님의 수명에 따라 부처님의 덕성을 시간의 무한성을 통해 밝히며 화엄 속에 순간과 영원이 공존한다는 상즉상입(相卽相入)에 대한 가르침이다. 여래의 수명이 광대하고 자재함을 심왕보살이 밝히고 있다. 부처님이 아승지품에서 말한 불가설의 무량한 공덕을 이미 갖추고 있다면, 여래수량품에선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그 공덕을 누리고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미륵불이 56억7000만년이 지나면 오신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집어 생각하면 석가모니불의 시간이 56억7000만년인 것이다. 미륵불을 기다리며 이 긴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으로 이 시간 속에서 보살행을 통해 준비하고 있거나, 성불을 해야 한다. 이건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생명체에겐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물엔 성주괴공(成住壞空), 우리들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로 존재한다. 중생에 입장에선 그렇지만 깨달은 부처님 입장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다. 부처님의 수명도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깨달은 입장으로 이해하라는 시간의 무한성이 주는 메시지다. 

겁(kalpa)은 계산할 수 없는 무한대의 시간이다. 한량없는 먼 겁이 한 생각이라는 것은 영원과 순간이 똑같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과 동서남북, 사유상하의 모든 공간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대단한 메시지다. 9세(世)란 과현미래의 3세를 다시 3세로 나누어 움직이는 시간의 동태를 말하고 여기에 시간의 근본단위인 일념을 넣어 10세(世)라 한다. 9세가 일념에 모두 들기도 하고, 일념이 모두 낱낱이 존재하는 시간의 통일성 개념이 화엄에서 등장한다. 중생구제를 위한 여래의 수명과 그 힘이 어떠한가의 답은 바로 “불생불멸 불가설불가사전”이다.

[불교신문3437호/2018년11월3일자] 

원욱스님 서울 반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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