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인 ‘백상예술제’에서 학생들이 색색의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며 즐거워하는 모습.

이른 아침 출근길, 교정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교정의 풍광이 아름답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노라면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감싸 안아주고 새소리까지 한 몫을 보탠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깊어가는 가을의 하루가 시작된다. 법당의 하루는 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누구든 먼저 등교하는 사람이 하게 마련이다. 예불 준비를 챙기는 가연 법사님, 좌복을 펴는 파라미타 지성 군, 환기 담당 교감 선생님, 차를 준비하는 L선생님과 H선생님, 예불 전 108배를 올리는 M선생님 등이 그분들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파라미타 신행팀장을 맡고 있는 성식이가 부처님께 올릴 감로수를 길어가면서 예불시간이 임박했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이어 파라미타 회장 승민이가 예불종을 치고 나면 예불을 올린다. 예불집전은 1학기에 효준, 중현, 진석, 태준이 등 2학년이 했고, 2학기 들어서는 1학년 진영이와 지성이가 자연스레 집전을 맡아서 하고 있다. 아침 예불은 학생들과 더불어 교장·교감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올리는데, 50여 명의 학교 대중이 올리는 우리말 오분향예불문, 나옹스님 발원문 행선축원, 우리말 반야심경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예불을 마치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석했던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과 함께 자연스레 법사실에 둘러앉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오늘의 관심사를 꺼내놓으며 잠시 차담을 나눈다. 며칠 전 학교 축제인 ‘백상예술제’에서는 파라미타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연화회 어머님들로 구성된 ‘파코(파라미타 코끼리) 합창단’이 개막 공연을 했다. 음악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평소에 연습한 실력으로 무대에 올라 학생들 앞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나서 각자가 손에 들고 있던 50여개 색색의 풍선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풍선을 보면서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해했다. 합창에 참가했던 학생, 선생님, 어머님들은 오래도록 이 행복한 순간을 잊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훗날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의 경험을 화제로 삼아 즐겁게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추억의 꽃을 피울 것이다.

날마다, 달마다, 혹은 해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가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 일종의 리추얼(ritual)인 셈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리추얼은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겪게 되는 어려운 일들을 이겨낼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마치 닻을 내린 배가 파도에 밀리지 않고 견뎌내듯이 인생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종립학교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고 법당을 중심으로 함께 생활하는 학생, 교사, 학부모님, 지역주민들은 불자공동체이다. 우리 불자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이렇듯 즐겁고 행복한 경험들을 함께 하면서 리추얼을 공유하고 있다. 불교종립학교와 법당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경험을 자주 반복하면서 서로 간에 믿음이 깊어지고 꿈과 희망을 키워간다.

즐거운 일은 하기 전에 설레고 하고 나면 또 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곳은 아름답고, 즐거운 경험을 간직한 장소는 가보고 싶다. 이처럼 우리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과 어머님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리추얼을 쌓아가는 그런 곳이다. 그런 학교가 있어서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능히 이겨내면서 계속 행복할 것이다.

[불교신문3437호/2018년11월3일자] 

이학주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 영석고등학교 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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