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정법 수호하는 당당하고 듬직한 호법선신

고대 인도신화 등장하는 ‘신’
부처님 설법 듣고 감화 받아
불법 수호에 호국 기능 확대
나라 위기 때 신중신앙 성행

①대흥사 범천도 1847년.

일주문을 지나고 긴 숲속 길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사천왕이다. 험악한 인상에 왕방울 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모습은 언뜻 무섭게 느껴지지만, 갑옷을 입고 창과 칼을 든 채 문을 지키고 있어 당당하면서도 듬직하다. 때로는 사찰 문에서, 또 때로는 전각 안에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이들은 바로 신중이다. 

신중은 원래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로 부처의 설법을 듣고 감화되어 호법선신(護法善神)의 기능을 맡았다고 한다. 부처님 설법 시에는 여러 성중들과 함께 나타나 불법을 찬양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일찍부터 경전에 등장하였다. 호국삼부경(護國三部經) 중의 하나인 <금광명경>의 성립 이후 신중의 불법 수호 기능은 차츰 호국 기능으로 확대되었다. 

신중은 단순한 호법신이 아닌 국가적 위기를 구원하는 막강한 무력을 지닌 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불·보살보다 한 단계 낮은 지위의 신이면서도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곧 신중이 지닌 불법 수호의 기능이 나아가서는 국가의 수호, 전쟁의 승리 등으로 대치되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특히 신중에 대한 신앙이 성행했다. 

신중의 종류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화엄신중을 비롯하여 <법화경>의 영산회상수호신중, <인왕호국반야경>, <대반야경>에 나타나는 호국선신 등 다양하다. 그중에는 제석천이나 범천과 같이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신도 있으며, 인왕이나 사천왕, 팔부중 등 주로 불법의 외호를 맡은 신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신중 신앙이 전래되었으며, 범천·제석천·인왕·사천왕·팔부중·십이지신 등이 주로 신앙되어 조각과 회화 등으로 많이 조성되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불전·탑·부도 등 불·보살이나 사리 등을 봉안하는 미술품에 외호중으로 조형화된 것이 많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신중도가 주류를 이루어 사찰 대웅전이나 극락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각 안에는 거의 빠짐없이 신중도가 봉안되었다. 

신중도의 형식은 제석도, 천룡도, 제석·천룡도, 제석·범천·천룡도, 제석·범천·마혜수라·천룡도, 39위 신중도, 104위 신중도, 금강도 등 매우 다양하다. 먼저 제석도는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은 벼락을 신격화한 것으로, 하늘과 땅을 장악하며 일체의 악마를 정복하는 신이다.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아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성립되면서부터 불교 속으로 수용된 제석천은 도리천의 선견성에 살면서 여러 천중 및 사천왕을 거느리고 모든 신중의 으뜸이 되었다. 제석도는 보살형의 제석천과 그를 둘러싼 천부의 여러 선신을 함께 그린 것이다. 제석천은 정면향을 하고 두 손으로 비스듬히 연꽃을 들거나 두 손을 가슴 부근으로 모을 하고 있다. 그림의 종류로는 제석천 만을 독존으로 그린 것과 천룡도와 한 쌍으로 그려진 것, 범천도와 한 쌍으로 그려진 것 등 여러 형식이 있다. 

일본 쇼타쿠인(聖澤院)소장 제석천도(고려)는 두 손으로 부채를 들고 의자에 앉아있는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제석천은 온 몸에는 화려한 영락을 걸치고 금니의 원문이 그려진 붉은 하의 위에 여러 겹의 옷을 걸쳐 입고 의자에 앉아있다. 이러한 제석천 형상은 일본 사이다이지 소장 제석도(조선전기)로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후기에는 제석천과 천룡을 함께 그리는 형식이 성행하였다. 흥국사(1741)와 통도사(1741)의 신중도는 제석천과 천룡을 각각 1폭으로, 해인사 신중도(1769)는 한 폭 안에 제석천과 천룡을 독립된 그림처럼 그렸다. 대흥사 소장 제석도(1847)는 범천도와 한 쌍으로 제작되었는데, 두 점 모두 세로가 3m가 넘고 가로가 4.5m나 되어 현존하는 신중도 가운데 가장 크다. 제석도와 범천도 모두 많은 권속들이 제석천과 범천을 향하여 시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권속 각각에 명칭을 적어놓아 신중도의 도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②고려시대 제석천도 일본 쇼타쿠인 소장.

제석·천룡도는 제석천과 무장의 천룡팔부중을 한 폭에 함께 그린 것이다. 위쪽에는 일월천자, 보살, 천부중을 거느린 제석천을 배치하고 아래에는 위태천과 사천왕, 팔부중 등 천룡팔부를 배치한 형식을 취한다. 천룡의 대장격인 위태천(Skanda)은 원래는 브라만교의 신으로서 여러 악을 제거하는 신이었는데, 불교에서는 불법과 가람을 수호하는 신으로 신앙되었다. 

위태천은 갑옷을 걸치고 합장한 팔에 보검을 받들고 있는데, 조선 후기 신중도에서는 새의 날개깃으로 장식한 화려한 투구를 쓰고 합장하여 보검을 받들거나 두 손으로 검을 짚고 선 모습이 일반적이다. 제석·천룡도에 표현되는 권속은 적게는 10구에서 많게는 20구 정도에 이른다. 때로는 제석천뿐 아니라 제석천과 범천이 상대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기에 마혜수라(大自在天)가 함께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천신의 모습, 마혜수라는 3목 8비(三目八臂) 또는 8비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04위 신중도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신중 외에 중국과 한국 등지의 토속신이 가미되어 형성된 104위 신중을 묘사한 그림이다. <석문의범>, <범음집> 등 불교 의식집에는 104위 신중에 대하여 상단은 대예적금강·팔금강·4보살·10대명왕 등 밀교적인 신, 중단은 범천·제석천·사천왕팔부중 등 원시불교의 호법신과 성군(星君) 등 중국 도교의 신, 하단에는 인도와 한국의 토속신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104위 신중을 1폭의 그림에 모두 표현한 것이 104위 신중도이다. 

1862년 해인사 신중도는 제일 윗부분에 정면향을 한 제석천과 범천을 비롯한 천부중, 중앙에 대예적금강[向左]과 대자재천[向右] 및 4보살, 8금강, 아래에는 중앙의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팔부를 비롯한 많은 무장신들이 배치되어 있다. 법주사와 범어사, 완주 송광사에도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제작된 104위 신중도가 있는데, 법주사 신중도(1897)는 대예적금강의 좌우에 위태천과 제석천을 배치한 점이라든가 대부분 무장의 신들로 이루어진 점 등에서 다른 작품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104위 신중도라고는 하지만 해인사 신중도처럼 124위를 표현한 경우도 있다.

금강도는 대예적금강(Ucchusma)을 중심으로 제석천과 범천 및 위태천, 천룡팔부중을 그린 것이다. 화염에 둘러싸인 3면 8비의 대예적금강을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하고 주위에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 및 권속들을 배열하였다. 대예적금강은 일체의 악을 제거하는 위력을 가진 신으로, 8금강과 함께 불법을 호위하며 중생을 교화한다. 몸에서는 화염이 타오르며 이빨을 드러낸 분노형의 모습이다. 

용주사 신중도(1913)는 화면의 중앙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진 대예적금강을 제석천과 범천이 협시하고 있다. 금강신 아래에는 위태천이 두 손으로 보검을 짚고 섰으며, 화면 좌우에 팔부중과 팔금강, 천부중 등을 배치하였다. 대예적금강은 금강저·금강령·법륜·보검·창·새끼줄을 들고 중앙의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수인을 취했는데, 금강의 몸을 8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어 괴이함을 더한다. 전등사 신중도(1916)는 금강신이 법륜 위에 발을 디딘 모습이 특이하다. 이러한 형식의 금강도는 용주사와 전등사, 정수사 등 경기 지역에서 20세기 이후 새로 나타난 형식으로, 얼굴에 표현된 음영기법은 서양화법을 연상시킨다.

전각 안에 봉안된 신중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와 내 가족이 안녕하고 모든 재앙이 물러가기를 바라거나 더 나아가서는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가 평안하고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소박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③천은사 극락보전 신중도 1833년. 

[불교신문3434호/2018년10월24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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