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 동이

노수미 지음·변명선 그림/ 서귀포신문

지역 불교계 주축으로
3.1운동보다 먼저 항거
법정사 항일운동 주목

소년 동이의 시선으로
당시 역사적 의미 조명
일제 수탈과 만행 담아

제주 서귀포신문이 올해로 법정사 항일항쟁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동화책 <법정사 동이>를 출간했다. 사진은 책에 수록된 변명선 작가의 삽화.

지난 1918년 10월7일 제주도 도순리를 중심으로 한 서귀포 일대의 마을 주민 700여명이 일본인의 축출과 국권회복을 주장하며 일으켰던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919년 3.1운동보다 먼저 일어난 항거로 제주도 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기도 하다. 당시 주도자들은 3.1운동 참여자들보다 무거운 형을 받아 수형생활을 할 정도로 일제 탄압의 강도를 드러내주고 있다. 지역 불교계가 주축이 돼 민족항일의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역사적으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올해로 법정사 항일항쟁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동화책 <법정사 동이>가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은 9살 소년의 눈에 비친 법정사 항일운동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KB 창작동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노수미 작가가 글을 쓰고, 제주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변명선 작가가 삽화를 그렸다. 고단했던 시절 순수하고 해맑은 9살 소년 동이의 시선을 통해 법정사를 중심으로 시작됐던 항일운동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동이를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나섰던 제주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동이를 물질 떠난 해녀의 아이로 설정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작가가 일본의 머구리 잠수선이 1880년대에 제주의 해산물을 착취했고 그래서 제주인의 항일의식이 외지에 비해 강했던 것 등을 담기 위해 물질 떠난 해녀의 아이로 캐릭터를 삼은 것이다.

여기에 물이 다 빠진 갈중이 바지와 해진 삼베 저고리, 짚신을 신은 볼이 발그스레한 귀여운 동이의 순수한 모습은 그날의 이야기를 더욱 진중하게 전한다. 특히 황지넹이, 갈중이, 곤밥, 고사리 장마, 몽돌, 갱이 범벅, 질구덕, 동고량착, 물허벅, 차롱, 개역, 지슬, 낭푼, 도채비고장, 꿩독새기, 산톳, 삭정이, 물애기, 정낭 등 책에 실린 제주어는 그 시대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한 칸짜리 초가 법당에서 스님들과 동네 삼춘들이 모여 제주도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기 위한 조심스러운 계획을 세운다. 총포 세 자루, 나무 방망이가 일본 경찰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무기의 전부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무모할 수 있는 계획이지만, 그들을 다독이고 이끈 것이 바로 법정사 스님들이었다.

“제주는 우리나라의 닻에 해당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닻을 들어 올렸으니, 배는 움직이기 시작할 게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배는 절대 멈추지 않으니, 더디 가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가거라.” 법정사의 큰 스님은 동이에게 늘 했던 당부로 결연한 민족의식이 돋보인다. 당시 법정사 스님들은 1914년경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들에게 설명하며 항일의식을 심어줬다. 거사 실행 6개월여 전부터 조직을 구성하고,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했다.

이와 더불어 동이가 사는 법정사의 법당에서는 스님들과 마을 삼춘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바다에서는 일본 어부들이 잠수선까지 동원해서 전복을 싹쓸이해가며 주민들을 사정없이 공격한다는 이야기,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빼앗겼다는 이야기,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낼 때 마을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가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 산신제를 지내는 것도 모두 미신이라며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당시 일제의 수탈과 만행을 주민들의 입으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한금순 제주대 외래교수는 책 서문을 통해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규모가 큰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면서 “또한 서귀포 지역주민 700여 명이 참여한 제주도 최대규모의 항일운동이라는 것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놀라운 것은 6개월 전부터 무기를 준비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는데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지 않은 것”이라며 “김연일 스님, 강창규 스님 등 항일운동의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은둔했는데, 이는 주민들이 이들을 감쪽같이 숨겨둘 정도로 항일운동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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