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할아버지, 불법승 삼보라면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 그리고 승가를 세 가지 보물이라고 하는 소리지요? 그런데요. 승가를 공동체라고 하던데 스님들은 어째서 모여 사세요?

공부 분위기가 갖춰져 있으면 
공부에 깊이 빠져들 수 있잖아 
수행할 스님들도 모여 있으면 
서로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어

우리나라에 1인 가구가 네 집 가운데 하나가 넘는다고 말하지. 그러나 가만히 짚어보면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혼자 산다는 건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을 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부처님은 그걸 가장 일찍 깨달은 분이셔. 우리가 공부를 하려면 학교에 가든지 도서관에 가잖아. 왜 그럴까? 공부하는 분위기가 갖춰 있어서 공부에 깊이 빠져들 수 있지 때문이지.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을 해야 하는 스님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말로 ‘거울지다’고 하는데 서로서로 되비춰주는 거울 노릇을 해준다는 말이지. 사람은 누구나 남다른 좋은 점을 가지고 있잖아. 이 스님은 참선을 잘하고 저 스님은 계율을 잘 지키고 또 다른 스님은 사람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힘을 가지고 계시거든. 어울려 사시면서 서로 배우며 이럴 때는 이 스님이, 저럴 땐 저 스님이 나서면서 힘을 보태는 것이지. 좁게 보면 승가를 스님공동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아니야. 탁발을 해서 사는 스님들은 재가자들이 내놓은 공양물을 쓰고 사셔. 재가자들은 스님들이 공부지어 내놓은 참다움을 기준삼아 살아가고. 이 또한 서로 거울지는 일이거든. 

그러나 아무리 뜻을 같이 한다고 해도 어울려 살다보면 서로 부딪치기 마련이고 갈등도 적지 않아. 그래서 함께 사는 이들은 누구나 주부가 되어야 해. 한두 사람이 노예가 되어서는 바람직한 모듬살이를 수 없다는 얘기야. 할아비가 요즘 어른들 모임에 가서 큰 소리로 같이 읽는 아기용 그림책이 있어. <돼지책>이란 그림책인데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집에서는 늘어지게 텔레비전을 보거나 빈둥거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밥하기며 빨래하기, 청소하기는 오롯이 엄마 몫이었지. 엄마도 직장에 나가는데 말이야. 버거워하며 상처를 많이 입은 엄마는 집을 나가버리고 말아. 며칠, 엄마가 없는 집안은 난장판 그야말로 돼지우리가 되고 말았지. 아빠며 아이들이 기진맥진해 있을 때 엄마가 돌아와. 그 뒤로는 식구들은 너나들이 주부가 되어 살아가더구나. 정신 차린 거지. 

살림살이는 ‘목숨을 살리는’ 뿌리로 무엇보다 앞서는데도 마치 군일처럼 밀쳐내고 있다며 드잡이하는 책이야. 지난 9월 말일에 구미에 있는 화엄탑사에 가서 불자님들과 함께 소리 내어 이 책을 읽었는데 입 모아 울림이 크다고 하셨어. 

[불교신문3433호/2018년10월20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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