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으로 들어간 참새는 
마치 제집처럼 여기저기를 
마음 놓고 다니며 먹고 싼다고 
아주머니는 해맑게 웃었다 

드나드는 참새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그걸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아주머니 미소가 
가을 하늘에 뭉게구름 같았다

내가 사는 골목에 자그마한 떡집이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있는 떡에 모두 군침을 삼킨다. 떡은 매일 똑같은 위치에 놓이겠지만, 기분에 따라 눈에 띄는 떡이 다르다. 얼마 전 떡집 앞을 지나는데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맑고 밝은 소리였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듯했다. 지저귐은 지붕에서 날아와 떡 방앗간 안으로 다시 안에서 지붕으로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신기한지 방앗간에 앉은 참새들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참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부리로는 쉴 새 없이 바닥에 떨어진 불은 쌀이며 떡 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있었다. 

골목길 건너에는 떡집 아주머니가 낡은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어린 손자 보듯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방앗간 드나드는 참새를 서울에서는 처음 본다고 하자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저렇게 날아온다고 했다. 방앗간으로 들어간 참새는 마치 제집처럼 여기저기를 마음 놓고 돌아다니며 먹고 싼다고 아주머니는 해맑게 웃었다. 드나드는 참새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그걸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아주머니 미소가 가을 하늘에 높이 뜬 뭉게구름 같았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방앗간으로 들어와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똥은 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해 크게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울 일도 아니라고 하는 떡집 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에 참새보다 내가 더 배부른 저녁이었다.

그다음부터 떡 방앗간을 지날 때면 참새가 어디 있는지 살피게 된다. 방앗간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불린 쌀을 빻고 그 가루로 떡을 찐다. 그러는 동안 참새는 지붕 난간에 앉아 기다리다 일이 끝나는 네다섯 시쯤 아주머니가 슬쩍 자리를 피해 주면 영락없이 안으로 날아 들어가 만찬을 즐긴다. 서울에서 참새가 떡 방앗간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풍경을 보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더구나 배불리 먹으라고 자리까지 마련해주니 터를 참 잘 잡은 참새들이다. 

참새가 드나드는 방앗간, 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참새는 배를 불릴 수 있어 좋고 방앗간 아주머니는 일과를 마칠 즈음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고단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 좋다. 지나가던 이웃은 고 조그만 참새가 제집인 양 포로롱 포로롱 날아다니며 재롱떠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하루 중 저녁은 모두가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이다. 참새는 먹고 사는 신성한 일로 방앗간을 차지하는 때이고,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육중한 방앗간 기계는 참새 소리 즐기며 한숨 돌리는 때이다. 또 쌀은 참새 지저귐을 들으며 들판에 서 있던 벼 시절을 추억하는 때이기도 하다. 

참새와 방앗간의 인연이 꽤 오래되었다는데 빈번히 떡집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다니 참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었나 보다. 나도 참새처럼 어디에 단골 방앗간 하나 마련해 두고 틈나면 찾아가 수다나 떨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떡집 아주머니가 참새에게 하듯 아무런 조건 없이 반가운 동무였으면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봄이면 매화, 가을이면 국화 띄운 차를 함께 마실 수 있다면. 또 격식을 차리지 않고 아무 때나 찾아가도 따뜻하게 맞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참에 내가 방앗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인심이 사납지 않으면 동무들은 절로 찾아올 것이고, 부담스럽지 않으면 편히 묵을 것이며, 내치지 않는다면 평생지기가 될 것이다. 떡집이 오래 남아 참새가 드나드는 훈훈한 모습을 내내 지켜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내 방앗간에도 참새들처럼 맑고 밝은 마음들이 시시때때로 모여 지저귀었으면.

[불교신문3432호/2018년10월17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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