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 사라지고 병사들 배려하는
바뀐 국군의 날 행사 감동 물결
불교행사도 행사 취지 잘 살리며
준비하는 사람도 챙기고 살폈으면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큰 길을 가득 메우는 군사퍼레이드가 사라지고 대신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엄숙한 유해봉환 의식이 거행됐다. 변화를 우려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달라진 모습을 본 국민들은 대부분 박수로 환영했다. 

군사력을 과시하는 대규모 행렬은 그 유행이 한참 지났다. 이제는 행렬의 규모를 보고 군대 수준을 가늠하지 않는다. 대단한 볼거리로 여기지도 않는다. 행사 겉모양만 크게 변한 게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군대 안에서 나타났다. 해마다 가을이면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를 대규모 열병식 준비를 위해 수천 명이 동원되고 온 부대가 긴장했었다. 하지만 올 가을의 병영은 전에 없이 평안하고 한가로웠다. 여가를 즐기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날들이 부쩍 많아지는, 그야말로 삶의 질이 나아지는 계절이었다. 

왜 열병식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통령은 ‘장병들의 고충도 헤아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꼭 필요한 땀은 흘려야하고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물음도 답할 수 있어야한다. 올바른 리더라면 그 물음을 늘 되새기며 낮은 곳까지 꼼꼼히 살피고 배려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올 가을, 국군의 날 풍경은 모두를 배려하는 지도자의 사려 깊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개신교는 요즘 교회 노동력 문제가 이슈라고 한다. 성장위주의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 교회들을 살펴보니 헐값으로 제공한 여성, 청년 노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 여성과 청년들이 스스로의 가치와 인권을 주장하면서 성장 원동력이 약해져 걱정이라고 한다. 지도자의 능력과 헌신이 교회성장에 큰 기여를 했겠지만 그 못지않게 무상으로 끊임없이 쓸 수 있는 약자들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는 지적은 제3자가 들어도 가슴 아프다.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있고 어쩌면 우리 절 집안 사정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교회는 달라진 세상사에 맞춰 고민하는데 우리는 논의조차 없으니 걱정이다. 

가을이 되면 사찰에서도 이런저런 행사들로 분주해진다. 많은 행사들이 멋지게 장엄하여 박수 받지만 더러 취지에 못 미치는 행사도 있다.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푸념과 불만을 듣는 행사를 여럿 접했다. 그런 불만들이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면 공동체를 약하게 하고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행사는 나름의 중요한 목적과 가치를 지니지만 해마다 반복하는 행사는 여전히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는 일인지, 다르게 변화할 필요가 없는지를 묻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도자의 몫이며 올바른 지도자가 갖춰야할 자질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고려해야할 점은 또 있다. 어쩌면 이 점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준비하는 대중들도 같이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중요한 행사를 지속시키는 힘은 관객 못지 않게 준비하는 조연 까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리더가 ‘왜’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늘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며, 동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함께 행복할 길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공동체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달라진 국군의 날 행사는 단지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 맨 아래 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불교가 먼저 사회에 모범을 보였어야하는데 거꾸로 됐다.  

[불교신문3432호/2018년10월17일자] 

지용스님 논설위원·군법사·육군본부 군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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