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화 ‘아바타(Avata)’가 크게 흥행한 이후로 가상현실의 캐릭터와 관련된 영화가 다수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바타’는 본래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ra)’에서 나온 말이다. 본래 의미는 ‘하강 혹은 강림한 분신(分身), 화신(化身)’을 뜻하는 말로서, 현대에는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행해주는 캐릭터로 많이 쓰이고 있다. 진짜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까지도 거뜬히 완수해내며 성취감, 만족감을 안겨주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바타가 죽거나 크게 다치더라도 진짜 현실에서의 나는 멀쩡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아바타를 창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알고 보면 지금 이 몸과 마음이 다름 아닌 ‘아바타’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삼신불 개념에 따르면, 이 몸은 화신(化身)이요, 이 마음은 보신(報身)이다. 진짜 몸은 법의 몸뚱이인 법신(法身)인 것이다. 다시 말해 화신이나 보신은 법신의 ‘아바타’일 뿐이다. 이것은 내 몸과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눈앞에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가상현실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금강경>의 게송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 한결 같이 허망하다./ 서른둘의 겉모습이 여래 아님 안다면은 여래 또한 볼 수 있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눈앞의 겉모습은 다만 가상현실일 뿐이며, 모든 존재는 실체가 아닌 ‘아바타’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여래의 특이한 모습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물질이나 음성으로 나를 찾고 구한다면 삿된 도를 행함이라./ 여래 볼 수 없으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私道 不能見如來).’ 

물질도 ‘아바타’요, 음성도 ‘아바타’의 작용일 뿐! 진정한 여래는 가상현실을 벗어나야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 꿈과 같고 허깨비나 이슬 같고 번갯불과 같으므로/ 응당 모두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가상현실 속 모든 존재는 ‘아바타’일 뿐이다. ‘아바타’가 생로병사를 거듭하더라도 진짜 나는 상관없다. 결국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말도 현재 게임 속 캐릭터에 너무 집착 말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라는 의미로 풀 수 있다. 현실에서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를 만난다면 이렇게 외쳐보자!

‘괜찮아, 아바타자나! 별 거 아냐, 아바타야!’ 

[불교신문3432호/2018년10월17일자] 

월호스님 논설위원·행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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