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23일 예술의 전당서 ‘고산・성각 선묵전’

쌍계총림방장 고산스님 대자 행초서 '불(佛). 135 x 35cm.

 선묵에 대한 인식 바꾸면서
 21세기 기계시대 서예까지
 나아갈 방향 제시
 실상과 가상의 사회가치 전도(顚倒)를
 ‘물속의 달’로 풍자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선화기능보유자인 성각스님(남해 망운사 주지)이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선묵(禪墨)특별전 ‘물속(水月)의 달’ 전을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관에서 갖는다.

선화보존회와 (사)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연합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스승인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스님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선화기능보유자인 성각스님이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희귀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기존에 발표된 선묵과 다른 새로운 작품들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성각스님은 30여 년간 20여 차례 선서화전을 열면서 원상(圓相)과 동자(童子), 법어(法語)를 중심으로 선묵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서와 행초를 뒤섞은 일자대자서 설치작품, 자작시 한글행초대자 연작 등에서 보듯 혁신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전시회에는 고산스님의 대자 행초서 ‘불(佛)’자를 비롯하여 성각스님의 ‘반야심경(般若心經) 270자를 전서와 행초서로 쓴 대자일자서(大字一字書) 270점을 비롯해 ‘반야심경(般若心經)’,․ ‘화엄경약찬게(華嚴經略纂偈)’, ‘금강경(金剛經), ’금강경찬(金剛經撰)‘ 전서8폭 대병, 행초 대자일자서(大字一字書) 35점으로 구성한 설치작품 ’물속의 달(水月)‘을 선보인다.

또한 자작시(自作詩)를 전서 필획으로 행초서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12폭 한글연작 대작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느냐’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미투운동을 뚜꺼비를 통해 우화적으로 풍자한 작품 ‘정답은?’ 등 총 450여점이 전시된다.

특히 이중에서 한글 연작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느냐’는 해학 풍자 현실비판적인 시어(詩語)가 큰 충격을 준다. 지금 까지 현대서예작가 조차도 어느 누구도 이렇게 노래하듯 구어체로 자작시를 시도하거나 실천해내지 못한 경지다.

여기에다 성각스님 선필만의 자유자재한 운필과 글자와 글자간의 띄어쓰기와 행간 필순을 뒤집어낸 자리에서 정반대의 유기적인 짜임새가 창출해내는 변화무쌍한 공간경영 또한 기존 작가들로부터는 잘 볼 수 없었던 시도다. 물론 연작의 마지막 구절의 ‘나無阿미타佛’ 국한 혼용에 가서는 선필의 내일은 물론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시대 한국서단의 돌파구까지 찾아낼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목적은 ‘선필(禪筆) 선묵(禪墨) 선서화(禪書畵)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회복하자’는 데에 있다. 우리시대 선묵에 대한 인식은, 서예가들 글씨도 그러하지만, 일반 예술은 물론 사회현실과 무관하거나 동떨어진 선승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특히 선묵자체가 통일신라나 고려는 물론 유가사회인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전후 근대까지 전통서예의 주류를 형성해왔지만 지금 현재 그 명맥조차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고산・성각 선묵전 ‘물속(水月)의 달’은 주로 예술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서예를 추구하는 서예가들의 서(書)와 조형미학이나 정신의 지향자체가 다르다. 특히 현실비판적인 서예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가들과도 뚜렷이 차별적이다.

그래서 왜 지금 선서화, 선묵, 선필이 다시 부활과 복원 및 활성화 되어야 하는가 하는 데에 매우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문명사적으로 인공지능(人工知能)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기계문명시대 한 가운데에서 선묵(禪墨) 선필(禪筆) 선서화(禪書畫)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서(書)는 문자(文字)를 떠나 근본 존재할 수 없다. 선(禪)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여 문자(文字)를 근본 부정한다. 이론적으로는 선서(禪書)가 성립될 수 없다. 상(相)을 만드는 순간 이미 그 상(相)은 상(相)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논리 이론 이성을 뛰어 넘는 직관의 자리에 선의 본모습이 발현된다.

문자(文字)로 문자(文字)를 뛰어넘는, 즉 상(相)으로 그 상(相)을 뛰어넘는,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인 자리에서, 실상(實相)과 변상(變相), 허상(虛相)이 둘이 아닌 자리에서 선필(禪筆)의 진정한 힘이 있다. 여기서 선서(禪書)의 본질이 파악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선필은 법필(法筆), 즉 서예가들의 서(書)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문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예술(藝術)로서 서(書)를 완전히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색공이 둘이 아니듯 일상생활과 실존사회를 직시하고, 현실에 발을 딛고 실존과 현실을 직관으로 초극해내는 데에서 선필의 진정한 가치와 힘이 있다.

그래서 전시구성과 전시디자인도 단순히 글씨를 평면적으로 보여주는 종래 배치형식을 탈피하였다. 먼저 고산·성각 선묵의 역사적 뿌리와 맥락을 진감선사와 그 비석글씨에서 불러냈다. 그리고 작품설치도 ‘물속의 달’ 컨셉을 전시현장에서 설치작업으로 구현하였다.

‘물속의 달’전은 달그림자이기도 하지만 나르시시즘이기도 하고, 물에 비친 개가 자기 자신을 보고 짓는 소리이기도 하다. 선필 선묵은 결국 나의 마음을 화선지라는 거울에 필묵(筆墨) 그자체로, 또 문자(文字)로 투영시켜낸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다. 심지어는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고 지배하는 시대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나’의 존재와 아바타가 탄생한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정체성이라는 기준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때가 지금이다. 다시 말하면 실상과 가상의 가치가 전도(顚倒)되고 있는 시대가 오늘이다. ‘물속의 달’을 이번 전시 주제로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각스님은 “이번 전시는 현대 기계문명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며 “관객들이 ‘수월미러’ 앞에서 비친 자기모습을 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는 절호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개막에 앞선 오는 19일(금) 오후2시부터 3시 30분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챔프홀에서는 ‘기계문명(機械文明)시대 고산(杲山) · 성각(成覺) 선묵(禪墨)의 의미’라는 주제로 전시포럼도 열린다.

포럼에는 '선예술(禪藝術)의 특징과 우리생활' (홍윤식 동국대명예교수), '인공지능 시대 선묵의 가치와 의미'(송석구 전 동국대총장), '성각스님 선화세계'(동국대 명예교수 법산스님), '선서화 미술치료의 심리적 정신적 안정에 미치는 역할' (백승완 부산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현대미술과 성각 선묵'( 김종원 문자문명연구소장, 서예가), '성각의 선화맥(禪畵脈)과 선서화'(이현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의 주제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성각스님 작품 '꼭 물속에 달'. 135 x 70cm.
성각스님의 '니一체유心조가뭔지아나'. 135 x 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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