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살 투명하게 보일 것 같은 
청명한 10월 하늘에 사찰을 찾아
일체유심조 설파한 원효 떠올리며
‘너와 나 하나’인 一心 정신 배운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떠 있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들판이 무르익은 이 계절에 삶이 엄숙해진다. 가까운 사찰에 이르는 길을 걷다보면 생각들이 많아지고 먼 곳에 있는 그리운 이들에게 안부 같은 편지를 써보고 싶어진다. 문득, 자주 발길이 머무는 근교의 사찰을 둘러본다. 굳이 남쪽의 큰 산 지리산의 깊은 산 중 사찰이나 암자가 아니어도 도시근교 사찰은 우리들의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는데 걸림이 없다. 돌계단을 올라, 석등과 석탑이 있는 마당을 가로지르면 대웅전 처마 끝에 풍경소리가 청아하다. 나무가 도열한 건너 산을 올려다보면 구름떼들이 모여 있다. 한때 물이었던 구름을 본다. 뒤돌아서서 경내를 둘러보면 약수물에 떠 있는 구름떼들. 한때 구름이었던 물을 본다.

한때 물이었던 ‘구름’과, 한때 구름이었던 ‘물’은 원효스님의 표현으로 말하면 일심(一心)이다. 원효(元曉, 617~686)는 계율을 어기고 설총을 낳은 후부터 속인 행세를 하면서 떠돌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불교를 알렸다고 전해진다. 농사 짓는 이들이나 옹기장이, 무지몽매한 이들에게 조차 서슴없이 불가의 신심과 수행을 전했다. 이름조차 불교를 처음으로 빛나게 했다는 의미로서 원효가 아닐까. 당시 사람들은 원효를 향언(방언)으로 ‘새벽’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생명을 뜻하는 땅 위의 물과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이 일심이라고 말한 원효의 깊은 가슴 속에는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가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원효는 수행과 함께 많은 저술을 남겼다.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등 200여권의 책이 원효에 의해 탄생했다. 이같은 저술은 당시 중국 최고의 종파인 화엄종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서역의 길목 돈황(敦皇)이나 투르판 지역에까지 원효사상이 퍼치는 원동력이 됐다. 일본 승려들은 원효의 저술을 직접 손으로 베껴 간직했다고 한다.

“하나의 도(道)에 머물며, 하나의 깨달음을 사용해, 하나의 맛을 깨닫는 것이다.”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 나와 있는 구절을 보면 동서양이나 이 우주, 이 세계가 하나의 깨달음을 통해, 하나의 도(道)에 이르러, 하나의 맛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우주를 하나의 맛으로 깨닫는 철학은 원효 외에는 다른 어느 철학자나 성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이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종교의 가치보다 철학의 가치에 더 가까이 근접해 있는 게 아닐까. 일본 교토의 화엄종 대표 사찰인 고잔지 절에는 원효의 사상을 치열하게 실천한 묘에스님(1173~1232)의 유훈 “본연의 모습이란”을 음미하면 원효의 일심(一心) 정신이 느껴진다. 원효의 일심을 통해 구현된 부처의 정신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없다. 또한 ‘나’와 ‘너’가 없다. ‘나’와 ‘너’가 없고 ‘그것’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게 열려있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되, 본질은 하나이다. 이른 바 열려 있는 정신이다. 한때 물이었던 구름을 본다는 것은 한때 구름이었던 물을 본다는 것이다.

우주의 속살이 투명하게 보일 것 같은 청명한 10월 하늘이다. 주변 사찰에 들러 일심과 일체유심조를 설파한 원효를 떠올려보자. 원효가 생을 다하자 그의 아들 설총이 뼈와 흙을 섞어 불상을 만들어 모시고 마지막 절을 올리자 그 불상이 홀연히 돌아보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불교신문3431호/2018년10월13일자] 

백학기 논설위원·시인·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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