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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공동체 '교구'를 가다] <8>제22교구본사 대흥사“어려울수록 더 활발히”…역할 확대로 해답 찾아
  • 대흥사=박봉영 기자
  • 승인 2018.10.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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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교구본사 대흥사 전경.

인구감소 등 여건 어렵지만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극복

소속사찰 40개·스님 110명
사찰관리 철저히 교구 운영

사찰음식 남도음식 결합 등
문화콘텐츠 개발 적극 나서

조선시대 중후기, 대흥사는 숭유억불의 국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흥성했다. 호국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산대사의 문손이 뿌리를 내리며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했다. 13대종사이기도 한 초의선사로부터 다선일미 차문화까지 더해져 최고의 융성기를 보냈다.제22교구는 호남을 담당하는 6개 교구 가운데 남도 끝자락에 있다. 교구본사 대흥사가 자리잡은 해남을 비롯해 목포시, 신안군, 영암군, 무안군, 강진군, 장흥군, 진도군, 완도군 등이 22교구 관할지역이다. 관할지역은 꽤나 넓지만 소속 말사는 40여개에 불과하다. 완도군의 경우 소속 말사가 하나도 없다. 교구를 구성하는 재적승도 110명 수준으로 수가 적은 편이다. 외형으로 보이는 22교구와 본사 대흥사의 위세는 다른 교구에 견주어보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과거가 반드시 오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근대 100년 동안 대흥사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재 22교구를 구성하고 있는 재적승의 변화는 눈여겨볼만하다. 교구가 단일문중으로 바뀐 흔치 않은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대흥사는 1994년 종단개혁과 함께 자리를 잡은 천운스님 문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행 종단의 교구체계는 1962년 통합조계종 출범과 함께 형성됐다. 1967년 일부 보완되기는 했지만 이때 교구획정이 이뤄진 것인데, 일제강점기 31본산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사찰을 본사로 하고 인근의 작은 사찰을 말사로 했기 때문에 지역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지역을 세분화한 장점이 있는 반면 지나친 세분화가 문중 중심의 교구가 되는 단초를 제공한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두면서도 한 지역에 여러 교구가 중첩되는 문제도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교구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문중이 교구에 기반을 두게 되면서 교구 재획정에 대한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이 된 점은 심각한 문제다.

대흥사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대흥사 만의 문화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서산대사 국가제향을 복원한 서산대제 예제관 행렬.

농촌지역이 위주인 22교구는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22교구만의 문제라 할 수는 없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교구의 위세가 더 위축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흥사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2015년 본사주지로 부임한 월우스님은 오랜 기간 본사에서 소임을 살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대흥사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

대흥사는 서산대제와 초의문화제, 템플스테이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다.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와 다산초당이 가까운 강진 백련사, 월출산 도갑사와 무위사 등도 대흥사를 알리는 소속 말사다. 유교식 사당 표충사가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나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등 유명 인사들이 남긴 현판, 두륜산을 병풍으로 삼은 지리적 여건, 구림구곡의 울창한 숲 등이 많이 부각됐다. 지난 8월 대흥사가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전통산사’ 가운데 하나로 등재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대흥사를 비롯한 도갑사, 미황사 등 22교구내 사찰의 어린이캠프와 한문학당, 해남불교대학의 문화축제, 선차 문화 국제 교류회 등 훨씬 다양해진 프로그램들이 최근 생겨났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발 더 나아갈 구상도 진행되고 있다. 사찰음식과 남도음식이 결합된 푸드템플스테이와 음식문화기행, 체험프로그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재정이 어려우면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재정을 늘려나가는 대흥사의 사례는 다른 교구에도 좋은 본보기가 될만하다.

제22교구본사 대흥사는 교구종회와 문도총회, 본말사주지회의, 포살법회 등에 모든 교구 대중이 참여토록 해 교구공동체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있다. 교구내 대소사를 논의하는 교구종회 모습.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복지활동도 전에 비하면 꽤나 늘었다. 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 지원을 비롯해 해남군장애인직업재활시설, 해남 한듬어린이집 등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꾸준히 늘려왔다. 이는 불자들의 지역사회 내 봉사활동과 나눔활동을 참여로 이어지고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다. 대흥사 주지 월우스님은 “척박한 땅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활동은 적은 역량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역량을 모을 수 있게돼 엄청난 성과를 얻은 것”이라며 “아무리 어려운 지역이지만 사회적 참여와 소통은 호남불교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믿는다”고 강조했다.

대흥사는 이런 사회적 역할에 모든 사찰과 스님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교구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산간벽지의 운영이 어려운 사찰에도 주지를 발령해 소속 사찰의 관리가 반드시 이뤄지도록 조치를 취해가고 있다. 교구종회와 문도총회, 본말사주지회의, 포살법회 등에도 모든 교구 대중이 참여토록 해 교구공동체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있다.

‘스킨십 리더십’으로 교구·본사 운영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주지 월우스님.

요즘 본사주지 스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교구 운영과 본사 운영, 대외협력 업무 등 그만큼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주지 월우스님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살림은 물론 불자들의 신행까지도 살뜰이 챙기는 ‘스킨십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스스로 찾아 나서서 하는 일들이다. 월우스님은 “편히 앉아서 주지 소임을 살려고 하면 되는 일도 안되는 것”며 “교구장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한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소통해야 역량도 만들어지고 힘도 모아진다”고 했다.

농촌지역은 사람이 귀한 시절이 됐다. 젊은이들은 모두 큰 도시로 떠나고 농촌엔 주로 부모세대만 남았다. 2015년 부임 이후 줄곧 지역민과 사찰을 찾는 이들을 부처님 모시듯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월우스님은 “대흥사 대중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 모시듯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본사주지가 됐다”고 웃었다.

월우스님은 본사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네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어른을 잘 모시고 대중과의 끊임없는 소통, 스스로 건강을 챙기면서 대중을 아우르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모두가 마음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발로 뛰면서 만나기도 해야 하고, 자기관리와 희생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지난 3년여의 본사주지 소임은 이런 원칙을 지키며 다짐을 반복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월우스님은 “본사주지 소임은 교구와 본사를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가 되지 않으면 4년의 세월을 허비하게 된다”며 “한번이라도 더 대중들을 만나고 고충을 이해하며 대중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흥사=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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