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폐허에서 어렵게 일구어낸
OECD국가의 대열에 서기까지의 
공든 탑 허무는 우 범하지 않도록
진영 논리 떠나 열린 자세 임해야

정책에서 정치를 배제하면 즉 정치적 타협과 고려없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 순수하게 오류와 오차가 없는 합리적인 정책이 될까. 완벽한 지성의 정책기획가나 생각이 같은 소수의 기획가들이 완전한 지식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든다면 최대의 합리성을 갖춘 정책이 될까. 최선의 합리적 정책들로 주장하거나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배제한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공공정책 분야의 대가인 미국의 아론 윌다보스키(Aaron Wildavsky)의 지적이다.

이른 바 거대 기획가들(grand planners)이 무엇이 옳은지 정확히 알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계획을 세웠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를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의 적폐요 자기 방어에 불과한 것인가. 기획가의 완전한 지식과 도덕성을 가정하는 기획에서 오류나 오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차의 존재나 가능성을 억압해 버리는 것일 뿐이다. 만약에 오차의 발생을 인정하다면 그러한 오류발생을 막기 위해서 더 큰 권한 집중과 총괄성을 요구하게 되므로 결국은 목적은 방향을 잃고 수단에 집착하여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윌다보스키는 시장과 정치 과정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경쟁적 가외성(competitive redundancy)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만장일치의 합의가 아니라 더 좋은 논쟁(better argument)이라고 역설한다. 

한국경제 곳곳에서 위기라고 경고음을 보낸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요즈음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을 체감하기가 드물다. 미국과 일본은 잘 나가는데 우리만이 거꾸로 형국이라 더 불안하다. 게다가 먹고사는 가장 근본문제가 대북정책 이슈에 매몰되었을 뿐 아니라 정권 주체들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불안까지 겹쳤다. GDP 성장률을 비롯한 실업률, 설 비투자율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래 최악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과 반대로 추락하는 경제상황을 지켜보면서 남북 간 군축합의, 한미동맹 파열음, 야당 설득 등 국민 총의를 모으기 위한 집권세력의 노력은 부재한데 대북정책은 급격히 변화해 안보 불안까지 가중됐다. 

통일부 장관이 북한은 이미 20~60개 가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공식 언급했으니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와 경제번영을 논의하는 꼴이다. 70주년 국군의 날 기념과 관련 형식과 실질에 있어 야당이 비판했지만 다행인 것은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평화는 우리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군의 사명은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어렵게 일구어낸 OECD 국가의 대열에 서기까지의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고각하(照顧脚下), 내 발밑을 세심하게 살펴서 공공정책만이라도 진영과 이념 논리에 젖어 편 가르기 말고, 완전하고 오류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정권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발하여 고생한 분들께 자문수당으로 대가를 지불할 만큼 달려오기 바빴던 정책들을 지금쯤은 원점부터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책은 집행과정에서 현실과 부단히 부딪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본 모습임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원효스님의 가르침처럼 성성적적(惺惺寂寂), 즉 깨어있되 고요하게 준비하고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생존가능한 통일 정책이고 경제 정책이다. 통일의 경제적 효과는 그때 가서 따져도 늦지 않다. 지금은 통일에 따른 준비에 매진할 때지 열매의 달콤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할 때가 아니다.

[불교신문3430호/2018년10월10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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