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초승달’ 말은 
의자왕 이야기 같지는 않다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면 
초심을 지키자는 것이다

정권 잡아 운영하는 이에겐 
버려서 안 될 마음가짐이다 
어떤 정권이건 저들이 잘나 
나라 잘 되는 것 본 적 없다

나에게 냉정하고 
남을 두려워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참된 담대’를 준다

추석 같은 명절을 지나고 나면 민심이 어떻다는 말이 들린다. 지역구가 있는 국회의원이나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입을 통해서이다. 올해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첫째는, 한 민주당 의원이 SNS에 남긴 글과 사진이다. 자신의 102세 노모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보내온 김정은 위원장의 송이버섯 선물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 의원은 큰누님이 북에 있다. 김 위원장이 보낸 버섯은 4000명에게 500g씩 나누었는데, 남북관계가 순조로운 최근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둘째는, 한 기자가 서울의 광장시장에서 보낸 기사이다. 상인 한 사람이 “좀 보세요. 사람만 많지, 어디 앉나. 안 앉지”라며, 예전보다 물건 사는 이가 적어진 시장 풍경을 전한다. 이른바 경제의 3대 지표라는 물가, 고용, 소비심리가 다 좋지 않은 올 추석이다. 부동산 대책은 허둥대고 최저임금 인상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남북문제는 잘 나가는데 경제는 ‘아직’이다.

그러나 사실 언제든 뭐든 다 좋은 적이 있었나. 정책이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잘하고 못하고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법이다. 잘한다는 남북문제도 너무 앞서 나간다고 걱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최저임금 인상이 지금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보다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고 싶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첫 명절인 작년 추석, 민심을 전하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기대는 둥근 달이나 현실은 초승달’이 그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누구나 만월 같은 기대를 한다. 더욱이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지금 정부에 대해 서랴.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빨리 달라지지 않는다. 열광하는 촛불의 광장에서 돌아와 내 초라한 안방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공기가 맞이한다.

그래서 생각나는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있다. 서기 660년, 신라가 백제를 치러 나가던 해였다. 본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義慈)는 용맹하여 담력이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스러워, 해동의 증자(曾子)라고 불리었다. 그런데 점점 주색에 깊이 빠져버려 정치가 어지럽고 나라가 위태하게 되었다. 그 때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 크게 외쳤다.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곧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 했더니, 깊이가 세 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먼저 무당에게 물었다. 무당은,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찼으니 이지러지지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것은 차지 않은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오르지요.” 전자는 저물어가는 백제요, 후자는 미만점영(未滿漸盈),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오르는 신라라는 말이다. 사세를 정확히 파악한 해석이었다. 그러나 왕은 화가 나 죽였다. 

다른 이가 말했다. “둥근 달은 번성한 것이요 새로 돋는 달은 미미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번성하고 신라는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겠지요.” 왕은 기뻐하였다. 그러나 삼켜서 달콤한 이런 헛말에 기뻐해서 무엇을 얻겠는가. 민심을 통해 얻은 ‘기대는 둥근 달이나 현실은 초승달’ 같은 말이 의자왕의 이야기와 똑 같지는 않다.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면, 초승달 같은 초심(初心)을 지키자는 것이다. 정권을 잡아 운영하는 이에게 결코 버려서 안 될 마음가짐이다. 어떤 정권이건 저들이 잘 나서 나라 일 잘 되는 것 본 적 없다. 나에게 냉정하고 남을 두려워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참된 담대(膽大)를 줄 것이다. 

[불교신문3430호/2018년10월10일자] 

고운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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