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는 건물 관리도 벅찬데
대규모 건축 불사 여전히 계속
정부예산 편하지만 무거운 책임
포교 지역과 상생 등 내용 중요

깊은 산중에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인부들이 바삐 오갔다. 도심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자연과의 조화는 먼 얘기 같았다. 심지어 위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즈넉함은 사라졌다. 지난 9월15일 사단법인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 회원 40여 명과 오대산 답사를 다녀왔다. 나옹선사가 수행하고 김시습 선생이 머물렀던 곳에 올랐다. 그러나 그곳의 한 암자는 예전의 암자가 아니었다. 웬만한 사찰급 불사(佛事)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옹대에서 적멸보궁을 바라보며 수행했던 나옹선사의 뜻이 이런 것이었을까.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패도의 시대 쓰린 마음을 달랬던 김시습 선생이 다시 온다면 어떤 시를 남길까. 상당수가 불교 신도인 회원들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불사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들 했다. 

이미 있는 건물을 관리하는 것에도 숨찬 것이 불교의 현실 아닌가. 그런데 웬 건물을 이렇게 짓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웬만한 건물을 짓는 데는 최소 수 억 원의 예산이 든다. 사찰 자체적으로 이러한 돈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아 불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지원금은 국민 세금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신중하고 최소화해야 한다. 받아썼다면 정확하게 사실대로 결산해야 한다. 천원짜리 하나도 근거를 입증해 투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내 돈이 아닌 돈을 사용하는 것에 수반되는 무겁지만 당연한 책무이다. 제대로 내용을 갖춰 성과를 올려야 하고 확실하게 결산을 해 ‘역시 불교계가 진행하는 행사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불사에 질적인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두 가지 방향이다. 우선 자체 예산 중심주의다. 어떻게든 정부 돈을 끌어오려 하기 보다는 자체 예산을 중심으로 불사를 기획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자체 예산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 어떻게든 신도 조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포교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또한 지역 사회에 사찰이 더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정부 돈을 받기 위해 포교보다는 유력 인사들과 교분 쌓기 나아가 로비에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아래보다는 위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제 아픔을 감내하더라도 이런 행태를 바꿀 때가 되었다. 그래야 불교의 경쟁력이 생긴다. 

두 번째는 불사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건물 등을 짓는 것만을 불사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것을 불사라고 봐야 한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다양한 측면에서 법보시를 활성화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넘쳐난다. 전국에 남아도는 암자가 한둘이 아니다. 건물을 자꾸 지을 것이 아니라 남아도는 땅, 남아도는 사찰을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역량이 안 되면 외부에 위탁을 해서 방안을 찾아내면 된다. 

다례재나 산사음악회 등도 마찬가지다. 단지 행사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내용을 충실히 갖추어야 한다. 입장료를 받는 사찰의 경우 입장객들에게 사찰안내 책자 한권이라도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찰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받으려고 하기보다 무언가를 자꾸 줘야 한다. 열을 주면 스물이 돌아온다. 이를 위해서는 주지 평가시스템에 대한 재정립도 요구된다. 정부 돈을 얼마나 끌어왔는가 보다는 실질적인 포교 실적은 어떠한지, 지역 사회와 어떠한 상생 노력을 했는지, 투명한 회계처리 시스템을 갖추었는지 등에 방점을 찍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불교신문3429호/2018년10월6일자] 

소종섭 논설위원·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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