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과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 <금강반야바라밀경> 중에서

“스님, 나는 누구일까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한의원에서 울화증이라 진단받은 젊은 처자가 질문을 던졌다. 숫한 사람들이 안으로는 스스로에게 묻고 밖으로는 선지식에게서 답을 찾던 물음이다.
“나는 누구인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룬 뒤 ‘나는’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배격하셨다. 스스로를 지칭하여 ‘여래’라 하셨다. 얼마나 쉬운가. 이리 쉬운 걸 그리 혼돈 속에서 헤맨다. 나는 ‘여래’다. 내가 ‘나’라고 여길 때 온갖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쌓이는 법이었다. 괴로움은 그저 그 괴롭다고 여기는 그 무엇일 뿐이고 ‘여래’는 여여한 존재일 뿐이다. 비닐하우스 처소도 해가 지니 선선하였다. 여래가 그 선선함을 그저 느끼며 즐긴다. 가을은 스스로 얽어맸던 족쇄를 풀고 자유롭게 ‘나’를 놓아주기에 좋은 계절이다. 
‘여래’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최고의 처방약이다.

[불교신문3425호/2018년9월19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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