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추석 사찰서 보내는 신행문화 정착돼야

시대 변화에 따라 명절을 맞아 가정이 아닌 사찰에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됐다. 사진은 지난 해 서울 봉은사 추석 합동차례 모습.

1인 가구 증가, 여가선용 등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사찰서 차례지내는 불자 증가

명절 사찰 합동차례 일상화
종교가 다른 가족들에게
불교 포교하는 기회 삼아야

# 정희순(61세) 씨는 명절마다 고민이 생긴다. 명절이면 항상 손수 음식을 준비해 차례를 지내곤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절에 다니는 자신과 며느리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의 차이도 인정하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막상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 준비로 며느리와 갈등을 빚는다. 그렇다고 마냥 차례를 지내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벌써부터 다가오는 추석이 고민스럽다.

# 이경희(64세) 씨는 3년 전부터 사찰합동 차례에 동참하고 있다. 그동안 손수 음식을 준비해 지냈던 제사 역시 간단히 약식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명절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대신 사찰 합동 차례에 동참하고 있다. 그편이 불자답다는 생각에서다. 자녀들에게도 이미 “내가 죽으면 절에서 제사를 지내 달라”고 당부해 뒀다. 명절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남는 시간은 가족 여행을 가거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족들이 함께 둘러 앉아 송편을 빚으며 정을 나누는 풍경은 추석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들도 옛말이 됐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을 만나 차례를 올리지만 명절 연휴를 이용해 평소 가기 힘들었던 해외여행을 가거나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명절 아침이면 반드시 집에서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최근 설날이나 추석은 명절보다는 휴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명절의 의미를 찾기 보다는 여가를 즐기려는 문화 때문이다. 이같은 사회 흐름에 1인 가구 증가 등 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가족이 담당해 오던 제례문화를 이제는 사찰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라고 하면 고인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천도재나 49재가 대부분이었다. 불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49재를 위해 사찰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명절 사찰 아침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천도재나 49재에서 확대돼 불자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을 모신 불단 아래 각자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고 가족들의 평화와 건강을 기원하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같은 사회 변화 흐름에 발맞춰 전국 사찰 역시 불자들과 함께 봉행하는 합동차례를 정성스레 준비하고 있다.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초청해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사찰도 많다.

서울 조계사는 추석 당일인 오는 24일 오전8시와 오전11시, 오후1시 3차례에 걸쳐 대웅전에서 한가위 합동 다례재를 봉행하며,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대웅전에서 한가위 3일 기도를 봉행한다. 서울 봉은사도 오는 24일 오전8시, 오전10시, 오후2시 경내 법왕루에서 합동 차례를 봉행하며, 사전 접수 불자들을 대상으로 추석 단독 차례를 봉행한다. 서울 국제선센터도 오는 24일 오전10시 큰법당에서 가정의 화목과 만사형통을 발원하는 추석 합동차례를 봉행하는 등 많은 사찰들이 불자들을 위해 합동차례를 준비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현대인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명절을 맞아 가정이 아닌 사찰에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됐다. 명절에 사찰을 찾아 합동차례를 지내는 문화는 불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신행문화다. 하지만 많은 불자들이 여전히 불교식이 아니라 유교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사찰 합동차례는 불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부처님 전에 큰 서원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봉은사 추석 합동차례상. 사진제공=봉은사

술을 올리는 유교식 차례가 아니라 차(茶)를 올리는 진정한 차례의 의미를 살리고 부처님 앞에서 여법하게 의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찰 합동차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조상에 대한 추모, 공경의 의미보다 격식만 강조하는 차례가 아니라 술 대신 차를 올리며 조상의 은혜를 떠올리고 스님들의 축원을 받으며 지내는 합동차례는 불자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 합동차례는 부처님 앞에서 불자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냄으로써 불자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계기도 된다. 가정에서 지내는 차례와 달리 사찰에서 가족들이 함께 불자로서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 또 추석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난 뒤, 남은 연휴 기간 가족, 친척들과 음주 등을 하며 특별한 일 없이 보내거나 여성들의 경우 강도 높은 가사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합동차례에 동참한다면 차례가 끝나고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찰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합동차례를 계기로 종교가 다른 가족들에게는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합동차례를 위해 사찰을 찾는 이들, 특히 불자가 아닌 이들을 위해 해당 사찰에서도 쉽게 불교를 접하고 법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전국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에서도 추석 명절 연휴 기간 동안 사찰을 찾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위해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서울 화계사, 용인 법륜사, 인제 백담사, 공주 갑사, 부안 내소사 등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들은 송편을 빚어 차례를 올리고, 불교문화와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사찰에서 차례도 지내고 지친 일상과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 홍법사 주지 심산스님은 “불자들이 차례를 불교의식으로 지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명절을 사찰에서 보내는 풍토가 정착돼 가고 있다. 포교 효과도 크다”며 “사찰마다 여건과 형편은 다르지만 시대 흐름과 변화에 맞춰 많은 불자들이 사찰에서 명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 국제선센터가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송편만들기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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