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은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이다. 단편이어서 읽기 수월한 탓도 있겠지만 20대 문청시절엔 이 소설에 반해 무식하게 외워보려고까지 했다. 소설 속 휘황찬란한 문장들을 세포 속에 한 글자씩 새겨 넣어야만 이런 독보적인 소설 언저리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개와 개구리 울음소리, 여선생과 동창 조, 사이렌과 자살시체… 작가가 20대 중반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소설은 ‘60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도회인의 자기상실’을 그리고 있다. 돈 많고 빽 좋은 과부를 만나 제약회사 전무로 승진하는 주인공 윤희중은 머리도 식힐 겸 고향 무진에 내려온다. 이곳에서 그는 순수했지만 암울했던 자신의 과거와 성공했으나 속물이 된 현재와 직면한다. 문제는 어느 한쪽을 추구하면 반대급부가 훼손되고 상실된다는 것이다. 순수와 속물, 암울과 성공. 이 과정에서 그는 안개처럼 풀어헤쳐진 의식에 빠져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허우적대다가, 결국 여선생의 조바심을 빼앗고 무진을 떠난다. 암울한 순수보다 성공한 속물 쪽을 선택한 것이다. 

자기상실의 극한에 내몰리는 곳이 두 군데가 있다. 첫 번째는 군대다. 계급이 깡패인 마초들의 세상이다. 마음 한번 잘못 다스리면 그야말로 큰 사고 친다. 두 번째는 직장이다. 여기선 ‘밥줄’이 깡패다. 일이 힘들수록 밑바닥을 훤히 내보이는 세계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탐진치 삼독에 시달리지만 먹고 살아야하기에 참는다. 서로가 ‘속물’이라고 욕하면서도 누구도 무진이라는 직장을 떠나지 못한다. 단 몇 분만이라도 얼른 직장과 직장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데, 눈치 없는 직장동료들 중엔 승용차로 같이 출퇴근하면 어떠냐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장애가 있어야 단련이 생겨 크게 이룬다는 말도 있지만, 이게 인내인지 수양인지 오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급기야 정신이 또렷하면 버틸 수가 없으므로 오히려 의식 속에 안개를 피워 올려 가사(假死)상태에 빠져든다. 자신을 하루하루 죽여서 한 달을 산다. 

휴일엔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 소설을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허구 속에서 난 진실해진다. 밥줄 때문에 상실해버린 나를 되찾으러가는 시간이다. 

[불교신문3425호/2018년9월19일자] 

김영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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