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매일 새벽 예불 올리고 출근해보니…
(2)오후불식 해보니…3.6kg 줄었다 두뇌도 멈췄다

(3)시도때도 없이 사경 해보니…쓰면 사라진다 ‘잡념’

<금강경>에 나오는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 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를 입 안에 굴리며 “네 생각은 어떠한가” 자꾸 묻고 묻다보면 쇳물 끓듯 끓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진다. 사진=김형주 기자

서울 강남 한 사찰에서 운영하는 사경반 취재를 간 적 있다. <화엄경>을 1000일 동안 독송하고 사경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한여름 좁은 공간에서 수십명이 모여 한글로 된 <화엄경>을 2시간 넘게 함께 읽고 쓰던 모습이 꽤 인상 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백발성성한 노인의 ‘바르르’ 떨리던 붓펜 끝을 잊을 수 없었다. 흘러내리는 돋보기 안경을 연신 올리며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 서울 조계사 앞에서 마주친 신도도 마찬가지였다. 사경집이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으로 책을 가슴에 꼭 품어 안고 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곱던지. 불자라 자청하지만 늘상 겉핥기식으로만 경전을 접해 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3일 불교전문서점에 달려가 사경집 4권을 샀다. 취미는 필사요 직업이 글쓰기 아닌가. '수행법이라기엔 너무 쉬운 거 아냐?’라는 오만이 겸손으로 바뀐 건 단 하루만이었다.

일자일배?  한글 따라쓰기 벅차다

사경집은 조계종 출판사에서 펴낸 한글사경본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택했다. 한문 보다 한글로 서술돼 있어 이해가 빠르고 글자를 따라 쓰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글씨 쓰는데 익숙하니, 마음만 먹으면 3일 안에 한권 쯤은 쉽게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 수성 펜을 쥐고 한 자 한자 회색 그림자를 따라 글씨를 써내려 가던 중, 15분도 채 되지 않아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허리를 세우고 어깨에 힘을 뺐다. 꾹꾹 눌러쓰던 필압을 조절하니 한결 나아졌지만 30분 쯤 지나자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이 뒤따랐다. 한 시간이 지나고 3페이지를 넘길 때 즈음 깨달았다. 기계처럼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말이다.

치아 뼈가 다 녹을 정도로 사경을 했다던 40년 외길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은 “사경을 시작 할 때 욕심을 너무 부려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경전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투덜대자 그는 “글자 수나 형식에 너무 집착해서 그런다”고 주의를 줬다. 김 원장이 사경 초보자를 위해 추천한 방법은 하루에 게송 하나, 한글 20자 정도를 베껴 쓰는 것. 직장인의 경우엔 출근 전 5분, 점심시간 10분을 비롯해 틈날 때마다 사경한 내용을 자꾸 머릿속에 되새기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종이가 아닌 마음에 새긴다

사경이 학창시절 벌로 받던 ‘깜지 쓰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한글사경본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수보리가 질문하고 부처님이 답한 내용을 32분(分)으로 나눠 70쪽에 담아내고 있는데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얼추 세어보니 약 180여 자가 넘었다. 1분은 한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반면 14분은 8페이지가 넘는다. 무턱대고 하루 3개분 또는 1시간 이상으로 잡았다간 육체적으로도 무리일 수 있는데다 글자 수에 집착할 것이 뻔했다.

사경은 눈으로 읽고 입으로 독송하며 마음으로 음미하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다스리는 수행이다. 여기에 집중해 원칙을 다시 세웠다. 한번 사경을 시작하면 10분 이상 지속할 것, 다만 쓰고 싶을 때는 제한을 두지 않고 마음껏 쓸 것 등을 기본으로 정했다. 사경집 앞에 나와 있는 13개 사경 의식 전부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절반의 의식은 제대로 치르기로 했다. 사경 시작 전 주변 정리하기, 발원문 낭송하기, 1분 여 간 입정하기, 쓰면서 내용을 계속 되새기기, 쓰고 난 후에는 반드시 독송하기 등이다.

분노가 일면 일단 써라

사경이 단지 ‘쓰는 행위’ ‘부처님 말씀 익히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사경하기’를 시작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사경집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처님과 수보리가 주고받는 독특한 문답이 재미있어서, 다음엔 그 뜻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다음엔 의미를 한번 더 익히기 위해, 계속해서 읽고 쓰기를 반복했는데 하면 할수록 분노가 조절되는 효과를 봤다.

출퇴근 지옥철에서 사경 내용을 입으로 중얼중얼 욀 때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 예민함과 까칠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거나 짜증이 올라올 때는 뒷말을 하며 구업을 짓는 대신 사경집과 대화하며 풀었다. 맑고 아름다운 경전 한 두 구절을 쓰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 지질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쓰기 시작하면, 일단 감정의 숨고르기가 된다.

불교전문서점에 가면 한지 뿐 아니라 사탕수수로 만든 다양한 사경집을 만날 수 있다. 한문과 한글 뿐 아니라 가격과 디자인도 다채로워 골라 쓰는 재미가 있다.

잡념 사라진 자리 성찰이 채운다

부처님 말씀을 따라 쓰다 보면 세상에 어려운 일 하나 없고 아름답지 않은 일 하나 없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금강경 구절 마디 마디를 되뇌다보면 어느새 깊은 성찰의 문이 열린다. 펜을 드는 순간 소란한 주변은 사라지고 산만한 마음이 정리가 된다. 콕콕 가슴에 박혔던 일, 꾹꾹 누르고 방치하던 일이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술술 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얇디 얇은 종이 한 장이지만 언제 어디서건 그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순간, 민낯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못난 나를 들여다보며 하심, 또 하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고독한 공간이 열린다. 

금강경은 심지어 어감마저 예쁘다. “수보리여~. 여래는 반야바라밀을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설하였으므로 반야바라밀이라 말한 까닭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등 마디 마다 자음 ‘ㄹ’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인지, 글이 입 안에 흐르듯 구르는 느낌이 퍽 좋다. 글씨가 예쁘니 말씨가 부드러워 지고 마음씨마저 고와지는 듯 했다.

<금강경> 사경을 권하며

<반야심경> <금강경> <천수경> 등 매일 외우고 접하는 친숙한 경전들이지만 단 한번도 사경을 해 본 적 없다. <반야심경>과 <천수경>이야 예불을 하며 자연스레 암기가 가능하게 됐지만 특히나 <금강경>은 따로 찾아보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접하는 데 기회가 닿지 않았던 까닭이다. “조계종 종헌 제3조가 ‘본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듯, 조계종 신도라면 반드시 한번쯤 <금강경>을 제대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딱딱한 말로 사경을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큰 돈 들이지 않고,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몇천원짜리 사경집과 펜 하나만 있으면 심리 치료, 정신 치료 못지 않은 분노 조절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일자일배(一字一拜) 정성으로 사경에 임하라 했지만 형식은 그 다음이다. 사람에 따라 근기나 상황, 형편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사경이니 어느 곳에서건 어느 때건 한 자 한 자 정성으로 쓰고 그 뜻을 마음에 새기면 될 일이다. 금강경 32분에 30번도 넘게 반복되는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 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를 입 안에 부드럽게 굴리며 “네 생각은 어떠한가”하고 자꾸 묻는 부처님 물음에 답하다보면 쇳물 끓듯 끓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지는 신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탑다라니 사경집. 금니, 은니로 글을 새긴 사경 작품은 1000만원대에서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