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새로운 전통 만들어간 스님 장인의 작품

▶ 법주사 숭정9년명 종 

법주사 중사자암종은 조선 숭정9년(1636)에 조성됐다. 전체높이 76cm, 입지름 48.1cm이며 정우스님과 같은 승장계열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충북 보은군에 소재한 법주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속리산 문장대 아래 세 곳의 암자가 유명하다. 이 세 암자는 통일신라시기인 720년(성덕왕 1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인근 바위가 사자를 닮았다고 하여 사자암(獅子庵)이라 한다. 상사자(上獅子), 중사자(中獅子), 하사자(下獅子)로 불렸는데, 그 중 중사자암(中師子庵)을 제외한 상사자암과 하사자암은 19세기 후반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중사자암은 1759년과 1837년, 다시 1887년에도 왕실로부터 천동(千銅)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고 전해지나, 6·25 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10월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중사자암에는 1742년 속리산중사자암원납비(俗離山中獅子願納碑)와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등 정도만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작품이 바로 1636년에 제작된 중사자암명(中師子庵銘, 법주사 숭정9년명) 범종이다. 

이 범종은 단룡과 음통을 갖춘 용뉴와 종신에는 상대와 하대, 그리고 상대 아래 연곽을 사방에 두고 9개씩의 연뢰를 배치한 전형적인 한국 전통양식을 따른 범종이다. 특히 상대 위로 높이 솟아오른 입상연판문대의 각 연판마다 불좌상이 부조로 표현된 점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입상연판문대 안의 불좌상 장식은 이와 유사한 시기에 만들어진 대복사(大福寺) 소장 영원사(靈原寺) 범종(1635)에서도 확인되어 두 범종의 친연성이 감지된다. 상대에는 뇌문과 하대에는 연당초문을 유려하게 시문하였고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 상부에는 연꽃을 지물로 든 보살입상을 번갈아가며 4구 배치하였다. 종신 중단에는 두 줄의 횡선을 둘렀고 하부에는 연곽 아래쪽으로 한 개씩 위패형 장식을 커다랗게 장식하였다.

이처럼 법주사 소장의 중사자암종은 양식적으로는 죽창(竹淐)과 정우(淨祐)의 승장 계열에서 제작한 삼막사종(三幕寺鐘, 1625)과 유사하다. 그것은 죽창과 정우가 제작한 범종이 주로 둥글고 높은 천판과 종구가 좁아진 종형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러한 모습을 이 종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입상연판문대, 상대의 뇌문, 연곽의 배치와 형태 등에서 정우가 제작한 영원사종(靈原寺鐘, 1635)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지만 단룡으로 이루어진 용뉴와 입가의 지느러미, 여의주를 쥔 발이 음통 뒤로 감겨져 있는 모습은 역시 정우가 제작한 백련사종(白蓮寺鐘, 1636)의 경향을 따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종은 일단 승장 정우(淨祐)의 여러 종에 보이는 개개의 특성을 계승하면서도 부분적으로 혼합한 특징을 보인다.

또한 중사자암 종에서 확인되는 범자는 2중선의 원권(圓圈) 안에 필선의 곡선이 강조된 붓글씨 형태의 실담체(siddham)의 범자 원문을 2단의 구조로 배치한 모습이다. 윗줄에는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인 ‘옴마니파드메훔’을, 아랫줄에는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인 ‘옴카타테야샤바’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장방형의 틀에 윗줄에는 3자씩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을 표현하고 아랫줄에는 파지옥진언이 엽전형(葉錢形)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범자만을 상대 문양으로 표현한 본격적인 예인 동시에 죽창·원우(竹淐·淨祐) 계열 범종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따라서 법주사 소장 중사자암종(1636년)은 비록 제작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죽창·정우와 같은 승장 계열에서 만들어진 범종이란 점은 분명하다. 기록된 명문은 ‘숭정구년병자 유월일주종중 백칠십근필공 치우속리산 중사자암…(중략)…인관비구 태응비구 …(하략)…대공덕주 분원비구(崇禎九年丙子 六月日鑄鍾重 百七十斤畢工 置于俗離山 中師子庵 …(中略)… 印寬比丘 太應比丘…(下略)…大功德主 椘圓比丘)’이란 내용이다. 

이 명문에는 종을 제작한 주종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시주자로 참여한 태응(太應)에 관해서는 최근 보물 1773호로 지정된 국청사 소장 장천사명(障川寺銘) 금고(金鼓, 1666)의 후면에 양각된 조성기(강희오년병오삼월일 경상도경주부남연산장천사금기중백근…대장 태응, 신열, 영득.(康熙伍年丙午三月日 慶尙道慶州府南連山障川寺禁氣重百斤…大匠 太應, 愼悅, 永得)의 제작자로 그의 이름이 확인된다. 또한 1641년 충청북도 보은 법주사 약사전의 삼존불상 제작에도 태응이 연묵(衍黙)과 함께 참여했던 인명을 찾아볼 수 있어 당시 장인들이 다양한 불교 미술품 제작에 참여한 사실이 파악된다.

이 범종은 입상연판문대 안에 불좌상을 장식한 독특한 의장이 돋보이면서도 세부의 문양이 섬세하고 주조가 단정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17세기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어 이 시기 스님 장인 범종의 계보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품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보물 185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하동 쌍계사 동종  

조선 1641년에 조성된 하동 쌍계사 동종은 전체높이 94cm, 입지름 62cm 크기로, 조선후기 제작된 동종 가운데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종은 전체높이가 94cm이고, 입지름이 62cm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감도는 쌍계사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 앞을 바라보는 한 마리의 용뉴와 뒤에 붙은 죽절형(竹節形)의 음통을 갖춘 한국 전통형 범종 양식을 따르고 있다. 천판 외연으로 앞서의 법주사 중사자암종(1636)에 보였던 각 연판 안으로 불좌상을 부조한 독특한 모습의 입상연판문대를 촘촘하고 도드라지게 장식하였다. 종의 외형은 종신 상부로부터 중단까지는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지만, 종신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직선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어 시각적으로 종구(鍾口)가 좁아진 느낌이다. 

종신에는 다양한 도안을 이용하여 장식하였는데, 천판 아래에는 2줄의 연주문 사이로 연판문과 당초문을 빽빽하게 부조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4개의 연곽과 원권(圓圈)으로 두른 범자를 교대로 장식하였다. 연곽의 전체 형태는 사다리꼴로서 연곽을 감싼 대 안에는 연화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그 내부로 국화형의 6잎으로 구성된 연뢰를 9개씩 표현하였다. 상대의 문양띠 아래로 이단으로 구획된 범자문대에는 상단에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하단에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주회하였다. 그리고 연곽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는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가 장식되어 있다. 보살입상은 두 손에 연꽃을 쥐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며, 위패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종비반석 왕도미륭 혜일장명 법주사계(宗啚磐石 王道彌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 하단에는 연화 당초문을 사용하여 한 줄의 띠 장식을 장식하였다. 

하동 쌍계사 동종의 용뉴와 음통.

특히 쌍계사 종은 다른 조선 후기 종에 보이는 명문과 달리 종신 중간에 양각(陽刻)으로 제작연대와 봉안 사찰만을 기재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사삼월일지리산 쌍계사대종각〃결 시주연화비구등원이 차공덕보급어일체아등 여중생개공성불도(辛巳三月日知異山 雙溪寺大鍾各〃結 施主緣化比丘等願以 此功德普及於一切我等 與衆生皆共成佛道’ 이 내용에 보이는 것처럼 ‘신사년(辛巳年)’에 현재의 쌍계사 대종으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제작 연대를 간지인 ‘신사(辛巳)’로만 간략하게 기록한 것은 1857년에 작성된 <영남하동쌍계사사적기문(嶺南河東雙磎寺事蹟記文)> 현판을 통해 시기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쌍계사를 숭정년간(崇禎年間, 1628~1644)에 조선후기 유명한 중창주인 벽암당(碧巖堂) 각성(覺性, 1575~1660)과 소요당(逍遙堂) 태능(太能, 1562~1649)스님에 의해 중창하였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따라서 쌍계사 종은 절의 중창이 진행되었던 기간 중에 신사의 간지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1641년(조선 인조 19)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작 장인을 기재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 승장 계열의 범종에 보이는 전통형 범종의 계승이나 입상연판문내의 불좌상의 표현, 연꽃 가지를 든 보살입상과 육자광명진언과 파지옥진언의 원권 범자문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숭정년간 쌍계사 중창 불사에 동원된 승려 장인에 의한 제작으로 추측된다.

이 범종은 임진과 병자의 양란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조선 후기 범종 가운데서도 한국 전통형 범종의 새로운 정착 과정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단정한 주조기술과 문양이 돋보이는 수작이란 점에서 2010년 보물 170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불교신문3423호/2018년9월12일자]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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