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조카며느리. 세상은 말이네. 헛것은 하나도 없다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지금 팔십 평생을 넘게 사니 그 이치가 피부로 느껴지더란 말일세.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반드시 피눈물이 나는 거라네. 무섭지 않나? 인간이란 본디 욕심이 많고, 좋은 마음보다는 나쁜 마음을 갖기가 훨씬 쉽다네. 왠 줄 아는가? 사람이란 게 원래 그리 만들어진 족속이거든. 하지만 나쁜 마음이 들 때마다 순간순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또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면서 살아야하는 거라네. 그러면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겠지. 하지만 아니네. 돌고 돌아 반드시 그 보답은 온다네. 내가 장담하지. 내 자식이 안 되는 것은 조상 죄, 부모 죄, 내 죄가 쌓여 그런 거라네. 그러니 우선 어째야겠는가. 부모한테 잘해야 하네. 왜냐, 그게 내 자식을 위한 길이니까. 모르는 것 같지만 다 보는 눈이 있다네. 부처님이 보시고, 하느님이 보시고, 천지신명님이 보신다네. 그러고 보면 참 무섭지 않은가? 세상 살면서 뭐든지 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냥 ‘그러마’ 하면서 살게. 나중에 다 돌아온다네. 어떨 때는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하면서 하나하나 따지고 싶을 때도 있지. 사람인데 그런 마음 들 때가 왜 없겠는가. 맞네, 그게 인지상정이지. 헌데 꼭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진실하다면 저 위에서 다 보신다네. 내가 먼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여보게, 조카며느리. 내가 먼저 살아보니 사람 사는 게 말이야. 꼭 잠깐 꾼 꿈인 것만 같네. 살다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머리는 백발이 되고, 이는 다 빠져버렸다니까. 젊은 날 혈기 좋을 때는 새끼들 먹이고 가르치려고 옆을 돌아볼 새가 없었다네. 온갖 고생 다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좋았던 시절 같네. 암, 애들 키울 때가 제일 재미있었지. 주책맞게 내가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네. 조카며느리가 너무 이쁘고 반가워서 그러네. 그러니 자네가 너그럽게 이해해주게. 손 좀 이리 줘봐. 손이 참 따뜻하구만. 조카며느리, 고맙네. 정말 정말 고맙네.”

올해 여든둘 되신 시댁 큰고모님이 바람이 좋아 놀러오셨다가 친정 조카며느리인 내게 하신 말씀이다. 나는 가만 앉아 있을 뿐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고마우셨는지 모르겠다. 내게도 올까. 거친 손으로 누군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깊은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바늘구멍만큼이라도 창을 뚫어 세상의 이치를 엿보게 되는 그런 날이, 올까. 세상을 허투루 살지 말아야할 이유를 발견한 날이 그렇게 또 한 번 지나갔다.

[불교신문3423호/2018년9월12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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